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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Dec 24. 2019

아빠육아휴직 80일차

육아는 결국 생명체가 홀로서는 것을 응원하는 것 아닐까

 라이프 오브 사만다를 보며 '도대체 치타 얘네들은 애 이렇게 진화한거야?' 라는 개인적인 의문과 함께 아이들과 다시보기로 하나씩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 아무리 시네마틱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아이들 입장에서 다큐멘터리는 지루하다보니 15분 정도를 지나가면 흥미를 잃고 다른 것을 틀어달라고 징징거리지만 절대 다른 것을 틀어주지는 않는다. 그럼 자리를 떠나 알아서 다른 놀이도구를 찾아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제대로 된 환경과 방법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주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다. 

이거 참 뭐라고 해야하나... 치타 너희들 좀 이상해...

 육아휴직을 한지 2개월 이상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왔다.

 

 평일에 아이들에게 제시해줄 수 있는 것들도 아빠의 머리에서는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으면 놀이터에서 일단 신나게 1시간이라도 신나게 뛰어놀게 하면 좋은데 추위로 인해 아직은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의 체온관리가 안되면 감기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이것조차도 매우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집으로 오면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실 의도했다기보다는 자포자기로 그냥 내버려두기 시작했다. 약 일주일이 넘은 시간을. 그러면서 어떻게 노는지를 하나씩 지켜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TV 틀어주세요" 부터 시작했지만 그것도 밥 먹는 시간에 자리에 앉혀놓기 위한 것을 제외하고 안틀어주기 시작하자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심심함을 극복하기 위한 놀이를 둘이서 따로 또 같이 만들어서 하기 시작했다.


1. 침실과 놀이방에 있는 인형들을 몽땅 꺼내와서 놀기
2. 이불과 의자를 이용해서 미끄럼틀 만들기
3. 침대랑 쇼파에서 방방 뛰기
4. 블럭 가져와서 쌓기 놀이
5. 책 가져와서 읽기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또 진화해서 이런 놀이들을 조합하기 시작한다. 

1. 미끄럼틀에 인형 태워주기
2. 침대랑 쇼팡에서 방방 뛰다가 미끄럼틀에서 굴러 떨어지기(....;;)
3. 인형들이랑 이불, 의자를 이용해서 집만들고 그 안에서 놀기
4. 동생한테 책 읽어주고, 동생은 얌전히 듣기
5. 블럭을 쌓았다가 무너트리기


 예시로 들지 않았던 참 많은 것들을 둘이서 쿵짝쿵짝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아이들의 뇌가 폭발하는 시기에 다양한 자극을 주는 것일뿐 내가 내 아이에게 보고 싶은 것을 내 의도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적절하게 안전이 제공된 통제된 환경만 제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에게 공감해주는 것이 오히려 전부아닐까? 


 물론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내가 노력하고 있다면 그 노력을 아이들은 온전히 순수하게 믿어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노력이 노오력으로 둔갑하여 착취 또는 조롱의 대상이 되는 세상 속에서 부모와 아이의 상호 간의 노력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게 또 있을까?


아이들에게 치타란? - 빠르다 / 시청 이후 - 조금 멍청한 것 같다...;;
지섭이랑 지우가 글자까지 익히게 되면 그 때부터는 나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이프 오브 사만다는 야생에 대한 약육강식, 적자생존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일반적으로 자연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시네마틱 다큐멘터리에는 "인간의 관점" 이 투영되어 조금 더 우리의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이 작품과 나의 짧은 육아휴직 기간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육아는 결국 어떤 생명체가 홀로서는 것을 응원하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해주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아이들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의 더 나은 성장과 홀로서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방치 아닌 방치를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결국 내가 해줘야 하는 것은 우리 집에서 산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안전감" 만 제공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잘못된 욕심 또는 지나친 방치의 균형점을 계속해서 찾아야겠다. 언젠가 도착하게 될 도저히 아이와 타협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서 나는 어떤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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