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적정성에 대하여
육아를 하다보면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밥을 안먹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혼자서 옷을 입지 않으려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씻지 않으려고 하면? 양치를 하지 않으려고 하면? 이렇게 단순한 문제만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놀이학습과 지식학습 상황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상황들은 부모에게 이러한 가치 판단에 직면하게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는게 과연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맞는 것인가?
안먹으면 어떻게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걸 왜 내가 떠먹이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에서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렇게 형성하는 식습관 자체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된다. 먹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배고프면 뭐라도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하지만 양치는 상황이 다르다. 충치가 얼마나 무서운지 반복적으로 교육해도 이빨 다 썩어서 공포의 치과치료를 하기 전까지. 막상 하더라도 고통이 조금 잊혀지면 막상 부모가 먼저 하자고 하기 이전까지는 잘 안하는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의 연속들이 부모에게도 "학습" 되다보면 이런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없으면 이 아이들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분리불안을 겪는 것은 유아기를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지만 오히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게 되는 한국 나이로 약 4~7세쯤 되는 시기는 오히려 민감한 부모일수록 본인에게 "분리불안"이 형성되는 시기인 것 같다. 맞벌이가 일상화되어 있는 요즘 생각해보면 굳이 가질 필요가 없는 죄책감이 마음에 원죄의식처럼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마음이 부모의 불리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는 자칫 잘못하면 과도한 보호와 그 이후 자립심 형성의 골든타임을 놓쳐 실제로 자아탄력성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넘어서, 내가 가장 아이들에게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했는데!' 라는 "부채의식" 까지 이어질 수 있어 항상 경계하고 있다.
하나씩 연습을 하고 있다. 54개월이 된 첫째에게는 절대 목욕한 이후 옷을 입혀주지 않는다. 로션도 손에 닿지 않는 등과 같은 부위에만 발라주고 나머지는 직접 해보도록 하고 있다. 이미 와이프는 한걸음 앞서서 주말을 이용하여 김밥 재료 등을 준비해놓고 직접 만들어먹는 것을 시키거나 저녁 상차림을 할 때 역할을 부여하여 하나씩 행동을 시켜보고 있다. (34개월차의 둘째가 이런 모습을 사장님 자세로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정말 모르는게 맞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곤 한다...)
내 마음 속에 항상 가슴 아프게 남아있는 사진이 1장 있는데, 그것은 6.25 전쟁 당시 많이 봐줘도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약 3세 정도된 아이를 보자기로 업고서 탱크 앞에 서있는 장면이다. 보는 내내 고통스럽지만 끝까지 보려고 노력했던 영화가 "가버나움" 이다. 결핍은 분명 누군가를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너무 심한 결핍은 심각한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나 역시 어떤 결핍은 내 삶의 성장동력으로 작동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와 아직 내가 그런 것들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는 자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의문이다. 어디까지가 아이들이 자아탄력성을 키워주는 적정한 결핍이냐는 것...
아마 모두에게 Fit 이 맞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저 오늘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대한 답을 한걸음씩 찾아가고 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영원한 미제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갈 뿐이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지금 내가 해야한다는 사실만은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 아이들은 우리보다 물질적으로는 더 나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신적, 문화적으로 더 나은 시대에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이 사회의 시민이자 한 사람의 부모로서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저 오늘도 아이들과 나 역시 함께 자라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오늘도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