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시간속에서 발견하는 반짝임-나의 문어발 취미 어반스케치 2
나의 첫 어반스케치 장소는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이다. 일본인 가옥거리로 들어서자 적산가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이 많았다. 사람들을 피해 좁은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누구에게 보여지는 곳이 아닌 사람이 사는 집들이 모여 있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길은 오르막길이였다. 길 옆 담장너머로 아랫집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1년전 방문했을 때보다 빈집이 늘어나 있었다. 민트색으로 칠해진 창틀을 가진 집도 여전히 자전거가 세워진채 그대로 있었다. 하늘색 나무틀로 된 미닫이 형식의 출입문과 창틀이 나무로 된 커다란 창이 맞은 편 골목 담벼락을 향해 있다. 민트색 창문이 예뻤던 이 집은 한동안 나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었다. 골목으로 향한 창문은 안쪽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릴것만 같았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서자 양 옆으로 길이 뻗어져 있다. 그 앞에서 만난 집은 처마가 땅과 가까웠다. 경사진 길에 맞추어 올라갈수록 지붕은 낮아졌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전봇대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슬레이트 지붕과 녹이 슬어 흘러내린 눈물이 적당히 어우러진 집이었다. 이 골목에는 번듯한 대문이 없는 이런 집들이 많았다. 나무로 된 미닫이문과 유리문으로 세상과 경계를 나누었다. 그 집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이전엔 누군가의 옥상이었던 곳이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누구라도 올라설 수 있는 옥상이 되었다. 뒤로 돌아서면 다닥다닥 머리를 맞대고 있는 울긋불긋한 지붕이 층층계단을 이루고 그 끝에 푸른바다가 펼쳐져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조용한 곳이어서 나의 첫 어반스케치를 그리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땅바닥에 그냥 주저 앉아서 선을 긋기 시작했다. 옆에서 남편은 그런 나를 위해 사진을 찍어 주었다. 골목길을 오르면서 났던 땀이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날라갔다. 그저 아무 생각도 안났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과 나의 사각거리는 펜소리만 날 뿐이었다. 가슴속에서 와글거리던 시끄러운 소리가 잠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앉아있던 옥상집 옆집이었다. 어디선가 모여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오셨나,
"에라 몹쓸 남자야 .너도 남자였드냐 나를 버리고 어느 여자 품에 에라 몹쓸 남자야, 부디부디 잘 살아다오. 그 남자 품에... . . ."
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우신건가. 구성진 할머니 노랫소리가 서글프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