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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23. 2023

나의 문어발 취미-그중 하나 어반스케치

엉겁결에 떠난 드로잉 여행

학교 미술시간 이후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내게 친구는 드로잉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니, 나 그릴줄 모른다고, 그려 본 적도 없는데 드로잉 여행을 어떻게 가!"

"나도 못 그려, 그냥 가면 돼. 지금부터 연습해서 가자."

친구는 자신이 들어가 있는 오픈 채팅방에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어반스케치 관련한 방이었다. 그곳에서 6월에 강릉으로 드로잉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친구는 1박 2일로 떠나는 그 여행에 함께 하자고 한 것이다. 더군다나 친구는 그 여행을 가기 위해 미국에서 들어오는 날짜를 맞춘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림이라고는 그려보지도 않은 내게 드로잉여행이라니! 미국에서 방문하는 친구를 위해 그 정도도 못해주냐며, 서운하다며 막무가내로 부추겼다. 


강릉까지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점도 망설임의 이유 중 한 가지였다. 울산에서 강원도까지 거리를 길 찾기 지도로 확인을 해보니 동해안을 끝에서 끝까지 이어놓은 길이었다. 겨우 울산시내에서 경주까지 운행하는 실력으로 강원도라니. 무조건 가야 한다는 친구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여행신청을 해두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여행지에 가서 뭐라도 그리려면 연습은 해야 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시간은 어느덧 보름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평소에 좋아했던 골목길을 찾아서 두 번 정도 연습을 했다. 그림이란 것이 이렇게 얼렁뚱땅 한 두 번 그린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도 안 그려보고 떠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드로잉 여행의 첫 번째 장소는 오대산 월정사였다. 월정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해 하루 전날 도착했다. 날씨는 불규칙하게 비를 뿌리며 구름과 해를 번갈아가며 내보였다. 비 내리는 숙소에 앉아서 연습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자리를 잡았다. 방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앞에도 기와, 옆에도 기와지붕이었다. 도대체 뭘 그려야 할지 첫 선 긋기가 어려웠다. 친구는 어느새 창문 밖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눈에 보이는 대로(그런데 보이지가 않는다. 흑흑) 모든 거 무시하고 그냥 그렸다. 투시, 소실점 그런 것은 아예 모를 때였다. 어쨌든 이래저래 한 장을 그렸다, 그리고 난 후의 뿌듯함이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내가 한 장 그렸으니까. 비교대상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이니까.     


다음날 오전에 월정사입구에서 모두 모였다. 수도권에서 단체로 출발한 사람들과 합류해서 월정사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릴 줄 아는 게 없으니 이곳도 어렵고 저기도 어렵고, 여기저기 둘러보다 친구가 앉은 곳 옆자리로 정했다. 그곳도 기와지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피할 수가 없구나. 기와와 돌담을 째려보며 선을 긋고 색을 입혔다. 또 한 장이 완성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내 이곳저곳에 흩어진 사람들의 그림을 보며 산책을 즐겼다. 내 그림보다 다른 사람의 그림 보는 재미가 컸다. 같은 장소를 그려도 똑같은 그림은 한 장도 없다. 모두 개인의 개성에 따라 본인만의 색깔을 드러낸 그림이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하나 둘 한 곳으로 모여 그림을 땅 위에 펼쳐놓고 인증샷을 찍고 다음 장소인 강릉 안목해변으로 이동을 했다.    

 

안목해변에서도 각자 그릴 장소를 찾아 나섰다. 날씨가 잔뜩 가라앉아있다. 안목해변은 카페거리로 유명하다. 해변 끝에 위치한 청명한 파란색이 시원한 산토리니 카페를 바라보고 앉았다. 첫 선긋기가 정말 어렵다. 또 보이는 대로, 내가 의지할 것은 그것밖에 없다. 그림에 대한 기초지식에 대해 백지상태였으니까. 바닷바람이 서늘했다. 그림을 마무리하고 친구와 따뜻한 커피를 찾아 카페로 이동했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시간이어서 다행이었다. 길가에 주욱 세워둔 그림은 지나가는 관광객의 발걸음을 늦추게 했다. 인증샷과 경품 추첨까지 끝내고 친구와 나는 다음 일정으로 일행들과 헤어졌다. 혼자서는 길가에 앉아 그리기가 힘든데 여러 사람이 모이니 사람들이 덜 의식되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 대해 긍정적인 점수가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이틀 동안의 드로잉 여행은 어반스케치의 세상으로 내가 한 걸음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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