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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Nov 09. 2020

흔적

  <흔적>이라는 단편영화 촬영을 마치고 꼬박 이틀을 집에만 있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촬영이었지만 내내 손발이 묶여있는 역할이라 바닥에 눌려있던 팔꿈치, 골반, 무릎 등에 멍이 들었다. 곡소리를 내는 부분도 있어 목이 상해 집에 오면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셨다. 

  무거운 내용이기에 사전에 뉴스를 많이 찾아봤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뒤 법의 심판, 그런 사례들은 왜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지 등. 나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사람으로 양쪽 입장을 모두 살펴야 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내 인생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면 끄집어내야 하고, 이해하지 못할 사건도 이해해야 했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는 척을 해야 하는 게 배우의 일이다. 

  내가 조사한 것들이 영화에 등장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그런 일들을 알고 있느냐, 그런 뉴스를 접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영화 속 인물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 등을 생각하며 나와 인물 사이의 접점과 차이점을 찾아가야 한다. 내가 연기해야 하는 역할이 악인이라고 해서 마냥 싫어해서는 연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 인물이 나라면 당연히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할 것이고, 죄를 짓고도 벌을 면하려는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역을 맡을 때면 더욱 복잡하고 괴롭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악인이라고 해서 애써 악한 표정을 짓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는 캐릭터로 만들기가 싫다. 매 순간 눈을 부릅뜨고 '나는 나쁜 놈이야, 건들지 마, 폭발할 테니까' 같이 연기하는 배우가 되기 싫다(물론 그래야 하는 캐릭터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항상 발톱을 세우고 있다가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꼭 그렇다. 진짜 무서운 사람들은 조용히 착한 척을 하다가 날을 세워야 할 때 한 번에 적을 해친다. 불필요한 곳에 힘을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웃고 있어도 묵직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무튼 그런 일차원적인 악인이 되지 않으려고 준비를 많이 했으나 현장에서는 막상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다 보면 자연스럽게 밸런스를 맞춰 인물의 농도가 변하기도 하고, 컷의 단축으로 인해 내가 생각한 만큼 연기할 호흡을 갖지 못하면 인물의 표현 범위도 조절해나가야 한다.  

어찌 보면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수에 맞춰 능수능란하게 밀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배우가 지녀야 할 기술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적은 회차에 많은 컷 수를 촬영해야 하는 이번 현장에서 나는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고, 결과물은 아쉬울 수 있겠지만 현장의 진행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매 컷마다 힘들지 않냐고 안부를 묻는 친절한 스태프들과 감독님 덕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던 나는 괜히 힘든 척을 하기도 했다. 

  

 촬영이 끝난 다음 날은 열심히 영화를 찍었다는 만족감에 기뻤지만, 둘째 날이 되자 공허해졌다. 격정적인 무언가를 해내면 금방 허무해지고 심심해진다. 현장에서는 졸리다, 피곤하다 징징대 놓고 막상 촬영이 끝나고 나니 아쉬운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운다. 

  단순히 연기를 하지 않는 상태 때문에 아쉬운 것이 아니다. 유달리 추웠던 그 날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주려던 스크립터와 직접 음식을 해서 시간이 되는 사람부터 식사를 해결해주던 피디, 대기 시간을 줄여주려고 조금 늦게 오라던 조연출의 세심한 연락과 중요한 씬이 끝나고 깊은숨을 내쉬던 나에게 치켜들던 사운드 감독의 엄지 같은 것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의 고생 안에서 나는 과연 문제없이 잘 해냈나. 혹시나 그들에게 실망이나 상처를 주진 않았나 걱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 간 스태프의 이름이 많다. 나는 그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훗날 누군가는 작품 이름을 말하며 나를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나에겐 대기 시간이 그들에겐 촬영 시간이다. 그들 옆에서 잠이 든 것이 나보다 피곤한 그들에게 부러움이 될 수 있으니 나는 또 죄를 지었다. 벌을 받기 싫어 괜히 커피를 사고 친구를 통해 치킨을 보내고 했다. 그래도 그들의 피로를 해소해줄 수는 없다. 나는 연기를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배우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좋은 배우가 되려면 아직도 멀고 험하다. 

  촬영이 모두 끝났다. 그들에게 좋은 배우가 되려면 다시 현장에서 만나야 한다. 그러니까 또 연기를 해야 한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 <흔적>이 남겨준 흔적은 아직도 내가 헤아리지 못하는 마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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