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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Nov 03. 2020

누구나 한 번은 울음을 참는다

  갈등이 생기면 참으라고 배웠다. 참는 게 이기는 거라고. 나는 화를 잘 참지 못했지만 울음은 잘 참는 아이였다. 울면 지는 것 같아서 참았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조금만 나를 건드려도 버럭 화를 냈고, 누가 나를 혼내도 울음을 꾹 참았다. 제일 참기 힘든 건 억울함이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 씌울 때, 눈물도 화도 나지 않고 가슴이 좁아진 것처럼 답답해 계속 가슴을 쳤다. 화를 자주 내는 아이는 말썽꾸러기라 불렸고, 눈물을 보이지 않던 아이는 독한 아이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화나 짜증이 줄었다. 화나 짜증은 내 감정을 단순화시켰고, 일차원적인 감정 표현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더 이상 괜한 일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힘이 없었다. 내가 부린 화 중 대부분은 나를 방어하기 위한 보호막에 불과했다. 커다란 개 앞에서 으르렁대는 작은 강아지처럼 무서우니까 자주 짖고 성질을 부렸다. 제발 나를 건들지 말라고. 

  반대로 울음이 늘었다. 내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던 나는 멍한 표정으로 정류장에 혼자 앉아 몇 대의 버스를 보내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울고, 손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애써 밝게 웃으며 다시 일을 하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을 보면서 울었다. 그 모습이 나 같아서 울기도 하고, 내가 위로해줄 수 없음에 안타까워 울었다. 

  하지만 울면 울수록 울음이 늘었다. 독한 아이로 자라날 때는 이별 앞에서도 강직하다가 이제는 일렁이는 한강의 물결만 보고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이 되어 울음을 자주 참았다. 이유를 알 수 없이 흐르는 눈물들이 어디에서 와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니 답답할 때가 많았지만 울음이 힘듦으로 치부될까 봐 울기 싫었다. 

  나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힘들다고 울 수 없었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몇 개의 일을 마치고 소주 한 잔 하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가난하다고 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힘들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니 계속 힘듦을 반복하는 꼴이 되어 그것도 그만두었다. 기운을 내고 싶었다. 

  누군가의 슬픔 곁에서 손을 잡고 어깨를 도닥이는 것에는 익숙해졌지만 나의 슬픔과 울음을 나누는 데에는 아직도 어색하다. 나의 슬픔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내 우울함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그도 슬프게 할까 싶어 밖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꾹 눌러 담고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 

  고작 서른몇 해를 살아놓고 뭐가 그리 억울하고 힘든 일이 많았는지 일일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기억들은 내가 억지로 지우려 부단히 노력한 결과임을 알았다. 행복한 기억들로 나를 채우고 싶어서 슬픈 일들을 계속해서 지워내려고 했다. 고생했다는 말보다 대단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남들은 못할 만한 일을 해내고 싶어서, 힘들겠네 소리가 지겨워서 애써 괜찮은 척을 많이 하던 날들이 버거워 사람들이 미워지기도 했다. 

  자동차도 암도 보험이 되는데 불행이나 슬픔은 보험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만큼 진단하기가 어려운 일이 없다. 그래서 기준을 정하지 못하니 보험도 만들지 못했다. 사람이 먼저였고 병은 나중에 생겨났는데 병은 치료하지만 아직도 마음의 정확한 치료법이 없다. 

  나는 꾸준히 슬픔을 인정하고 나누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 화나 짜증 말고 아쉬움, 결핍, 서러움, 안타까움, 속상함, 헛헛함 같은 말로 나누고 나눠서 최대한 마음에 가까운 말을 찾아본다. 가끔은 여러 단어가 섞이기도 한다. 허공을 떠다니며 눈물샘을 쿡쿡 찌르는 마음을 찾아 그 이름을 적어내는 것이 내가 슬픔을 공부하는 방법이다. 나는 이제 집 계단을 오를 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대신 두 발로 계단을 쿵쿵 밀어낸다. 모든 감정의 값을 눈물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감정을 짚어낸다. 고요하게, 침착하게, 한 번의 눈물을 참아내면 어떤 감정은 슬픔의 책임도 아니었다. 모든 죄를 불행에게 묻자니 불행도 불쌍하다. 

  그러니 너무 나무라지 말자. 감정의 죄도 나의 죄도 아닐지도 모르니까. 당장 행복해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따금씩 희망 같은 것이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이제 울음을 참는 대신 찾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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