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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Oct 29. 2020

견딤


  어릴 적엔 어른이 되면 삶이 다 편해질 줄 알았다. 누구나 자기 집이 있고 좋은 차를 타고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여행 다니며 좋아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보통의 삶인 줄 알았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해야 할 일이 많으니 힘들어도 공부 열심히 해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대학 가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무게는 더욱 커졌다. 내가 당연히 여겼던 자유를 누리려면 시간을 얻어야 하고 시간을 얻으려면 그만큼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며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 내가 벌 수 있는 돈이 같이 줄어드는 것이 자유의 대가였다.

 꿈을 키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대신 집에서 반쯤 갚아준 학자금이 아직도 매달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있고 나는 그 돈을 내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게 꿈의 대가였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평생 같은 동네에 살자고 하던 친구들은 많이들 흩어졌고 콩 한쪽도 나눠 먹던 아이들은 이제 만원 한 장도 나눠 내야 하는 삶의 터전에서 부단히 발을 구르며 살아간다.

  풋내가 나는 입으로 나 너 좋아해 소리를 내뱉던 솔직한 아이는 온 데 간데없고 사랑이 귀찮아져 버린 어른이 되어 혼자가 편하다고 느끼는 고독한 사람이 되어 간다.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해내며 어디에 가서도 열정 넘치게 에너지를 내뿜고 배우고 익히며 자라났는데 아직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은 허탈한 기분에 이제라도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까짓 거 뭐 안 되면 어때, 같은 마음으로 살아보니 나는 계속 제자리고 성인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런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 존재가 되어 투명인간 취급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옳은 소리를 해도 손해를 보면 안 되는 사람들은 이득이 되는 방향을 선택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쩔 줄 모르던 어린 자아에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나이 든 자아가 된다는 것이다. 경험에 의존한 선택들이 보다 안전한 곳으로 자신을 이끌고, 안전한 선택 안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른들의 삶이다.

 그렇게 손해를 보지 않는 대신 눈 감고 지나가야 했던 슬프고 부끄러운 일들이 마음속에서 곪는다. 진정 원했던 선택을 했는지 고민에 빠지다가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시켜야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게 어른의 삶이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어른들의 삶이 편해 보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괜찮은 척을 해야 하니까. 힘들어도 가난해도 떳떳하지 못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날과 다를 게 없는 척, 괜한 일로 집중받지 않으면서 눈치 보는 일을 줄이며 마음을 다스린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면 되잖아요”

  내가 무언가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눈 앞의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하면 되지. 대신 무언가를 포기하고. 무언가를 선택함으로 무언가를 잃기 싫을 뿐. 진짜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이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일이다. 고마운 일이 있으면 갚아야 하고 미안한 일이 있으면 사과해야 하며 때로는 모른 척해놓고 뻔뻔하게 살아가는 고통을 껴안는 삶이다.

  고통은 숨 죽이고 있다 암처럼 터진다.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지나고 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다 어느 순간 터져 나온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고, 애써 괜찮으려 했지만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던 것들이 겉으로 스며 나온다.

 어른들은 편한 게 아니라 잘 견디는 거였구나.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견디고 또 견디고 있었구나. 무리해서라도 행복한 척을 하며 사는구나. 진짜로 행복해지는 건 너무 어려운 거구나.

  그럼 나는 행복하게 살자. 나도 가끔은 비겁한 어른이겠지만 대부분을 어른스러운 어른으로 자라나자. 고맙다, 미안하다 소리를 자주 하자. 손해도 보고 누군가를 도와도 보고 열심히 사는데 사람 냄새를 잃지 말자. 그렇게 견디며 어른이 되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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