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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Nov 12. 2020

각자의 최선

  다들 열심히 산다. 아침저녁으로 건강을 위해 조깅을 하거나 헬스장에 가고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사람부터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SNS에 인증한다. 일을 마친 사람들은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힘든 하루를 보상받거나 사고 싶은 물건을 스스로에게 선물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차려지지 않을 만큼 피로한 사람들은 카페인의 힘을 빌려 집중력을 발휘한다. 과학적으로 카페인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말고는 이제 사람들에게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사람들은 잠이 깨고 집중할 수 있다고 믿을만한 게 필요하다. 그래서 나도 아침에 한 잔 마시던 커피를 수시로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내 주변에는 유독 프리랜서와 개인 사업자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체계적으로 일일 업무 할당량이 나뉘어 있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일의 노예가 된다. 본인이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고, 그것이 곧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을 재량껏 늘리거나 줄일 수 있으며 혼자서 여러 파트의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끝도 없이 일이 쌓여있다. 게다가 일일 업무량을 초과하면서 돌아오는 수익이 곧 내 것이 되니 뿌듯함에도 중독되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 배우로서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면 팔도 사투리부터 지역별 외국어 연기 같은 언어 훈련이 되어 있으면 좋을 것이고, 각종 무술이나 특기를 연마하거나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모르니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업군이나 인간 군상에 대해 항상 연구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려면 만물을 터득해야 하는 것이니 당연히 인간으로서 해낼 수 있을 리 없다. 

 

 요는 내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끝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예전엔 직업이 이렇게 다양하지 않았다. 다들 어디 회사에 취직했다고 하면 대충 잘 살겠구나 하고 무슨 장사를 한다고 하면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겠구나 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같지 않다. 성공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다양해졌고, 성공을 바라보는 수준은 계속해서 상향화 되고 있다.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 나보다 더 직원을 많이 거느린 사람, 나보다 커다란 집에 사는 사람, 나보다 좋은 차를 타고 고급진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다들 최선을 다 하고 있음에도 본인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분주해진다. 성공에 대한 판단은 세분화되어 가고 있지만 성공에 대한 평가는 점점 더 물질에 대한 소유에 치중한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자본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무자비한 소비로 환경이 계속해서 망가져 언젠가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해도 자연에너지 사업이나 환경 문제 또한 자본 없이는 해결할 수가 없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위태로움을 느끼게 되었고 안 그래도 미래가 불안한 젊은이들은 그나마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저축해놨던 자금을 모두 주식에 투자하거나 배달 알바를 하는 등 세컨드 잡을 찾게 됐다.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 어느 분야가 먼저 자동화되어 인간의 능력이 필요 없어 질지 비로소 몸으로 깨닫게 됐다. 젊은이들이 이 정도니 청년들에게 항상 우선순위를 내줘야 하는 장년이나 노년층, 혹은 장애인이나 임산부 등은 더욱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적 재난 상황 속에서 누구를 탓해야 할 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위기를 이겨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상황이 힘들다고 해서 개개인이 포기를 하기 시작하면 재난은 극복되지 않는다. 다들 살아남아서 각자 먹고 살 방법을 모색하고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이미 수많은 재난을 극복해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연기를 하는 날이 줄수록 글을 쓰는 시간이 늘었다. 내가 일하는 날이 줄었음에도 누군가는 꾸준히 촬영을 하고 있음에 바이러스 탓이 아니구나 싶어 탄식이 절로 나오고, 나보다 앓는 소리를 하는 친구들 앞에선 같이 조금 더 버텨보자고 말한다. 그래서 글을 꾸준히 써서 또 책을 한 권 내면 바이러스에 방해받지 않고 누군가는 읽어주겠지 싶다. 서른셋을 기념하며 낸 책인데 이제는 이게 내 밥벌이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런 푸념마저도 행사나 공연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예술가 친구들 앞에서는 사치다. 그들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하는 것에 사과를 건넨다. 


  때로는 불가항력의 사건이 찾아온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시대 속에서 힘을 모으기도 어렵지만 연대해야 한다. 융합과 소통으로 새로운 일을 마련하고, 새로운 형태로 새롭게 소비되어야 한다. 나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인재가 되지 못하지만 매일 고민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 

  다들 열심히 산다. 살아남고 또 살아남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듯이, 추운 밤이 가고 따뜻한 볕이 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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