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는 아닐 지라도
나는 올바른 말을 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힘을 내자는 말은 자주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여러 곳에서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가고 있다.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취미생활에서도, 심지어 놀 때도. 최선의 삶에 맞춰져 있는 우리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방법을 많이 잊었다. 해서 모든 일들이 의미 있기를 바라고, 삶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간혹 그러지 못한 일들을 겪고는 괜히 했다거나 실패했다는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한다.
물론 성과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반복되기만 한다면 소모되는 기분이 들 테니까. 하지만 때로는 매우 긴 반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대체로 그런 것들에 매력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하는 편인데, 여든이 되도록 평생을 한 사람도 완성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연기가 나에게 그러하고, 매일 같이 쓰는데 마음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글이 나에게 그러하다. 그런 일들은 내가 언제 어느 시점에서 발전했는지 쉽게 알아챌 수 없고, 사람들의 평가가 좋아졌다고 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즐거움을 준다. 그것은 언제든 더 열렬한 최선을 필요로 하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한 번 더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한다. 한 시간이면 끝판왕을 깰 게임을 십 년, 이십 년 할 수 있는가. 몇 번 시도해봤을 뿐인데 세계에서 최고가 된다면 그것이 값진 도전이 되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어려워하는 것에 그토록 승부욕을 보이는 것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고, 충분히 잘해 온 것 같은데 눈 앞에 더 대단한 대상이 있을 때,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좌절을 하다가도 한 번 더 도전한다. 이기고 싶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할 순 없다. 나 같은 경우엔 관심 있는 분야에만 승부욕이 생기고 관심 없는 분야에서는 백 번을 져도 신경 안 쓰는 편이다. 잘하고 싶어 하는 일 몇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에서 패배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상식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상식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보다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게 정한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입시를 할 때 수리나 과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고2 때 까지는 모든 과목을 빼놓지 않고 들었지만 고3 이 되고 나서는 연극학부 입시에 관련 있는 언어, 외국어, 사회탐구 2 과목에 집중했다. 그 과목들이 나의 합격과 깊은 관련이 있으니까. 기초교육의 범위를 넘어서면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물론 살다 보면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일들이 내 삶에 깨달음을 주거나 지혜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에겐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고,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한 분야 만이라도 수준급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이상의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뭐 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일에 있어서는 당최 포기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특징이다. 잘 하진 못해도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중요했다. 그리고 잘하고 싶어 노력하는 시간의 나를 좋아했다.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으니까. 열정은 패배감이나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힘이었다.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를 좋아하게 된 건, 찰스 스트릭랜드가 가정도 내팽개치고 자신의 욕망만 채운 비윤리적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목숨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어떤 전율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지만 한 번쯤은 그런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인간이 죽음 앞에서도 창작을 하려는 모습에 동경 같은 것을 느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니다. 잘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때엔 패배감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최선을 다 한다고 해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꾸준히 힘을 내야 한다.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연료를 넣고 달리는 기차가 되어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목적지는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