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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Dec 15. 2020

집콕

  이번 주 내내 집에 머무르는 중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벗어던지고 싶어 아무런 구직 활동도 하지 않고 일주일만 머물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일주일 정도 벌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의 돈은 있다. 

  우선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식량을 사다 놓았다. 다행히 다이어트에 매번 실패하는 덕에 냉동고엔 닭가슴살이나 다이어트 도시락이 충분히 쌓여 있었고, 냉장고엔 채소가 넉넉히 있었다. 한 끼 정도는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반려견을 산책하면서 도시락 같은 걸 포장해오는 것으로 충분했다.

  집에 필요한 것들을 구비한 뒤, 책장에서 올해 구매한 책 중 읽지 않은 책들을 꺼내 읽었다. 넷플릭스와 왓챠에 아직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좋아하는 재즈 아티스트들의 앨범과 발행 연도를 정리하고 내가 몇 곡이나 알고 있는지 체크하며 시간을 보냈다. 올해 들어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집에서 매일 이러고 놀았다. 보고 싶은 영화, 봐야 하는 영화 목록을 짜고 공테이프에 좋아하는 곡들을 녹음해가며 나의 취향을 소중히 쌓아갔다. 읽은 책마다 독후감을 써가며 별점을 매기기도 했다. 별 일 없는 날이어도 몇 줄의 일기를 써가며 하루의 기분을 기록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혹은 벌어야만 하면서부터) 음악이나 영화를 대할 때에도 왠지 업무적으로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보고 듣는 것이 모두 나의 자산과 지식이 되어야만 하고, 이것을 쓸모 있게 다룰 수 있지 않으면 불필요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온건한 마음으로 감상하는 일이 적어졌다. 좋은 작품을 감상했을 땐 뿌듯한 시간이 됐지만, 안 좋은 작품을 모두 피해 가며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직업적으로도 그래선 안 되고.   


  이런 지경에 이른 데에는 경제적인 압박감이 한몫했다. 돈을 벌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 같아 이곳저곳 일을 알아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지출이 생기면 그만큼 다시 수익을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일을 해왔다. 나는 당장 부자가 되진 못 하더라도 과거의 끔찍한 가난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남으면 단기 알바 같은 걸 자주 했다. 물론 단기 알바도 내 직업과 관련된 일이라는 점이 예전과 많이 바뀌긴 했다. 연기 레슨이나 간단한 영상 촬영에 이미지를 내어 주는 일로 쏠쏠하게 수입이 들어왔다. 

  어쩌면 바이러스로 일이 줄 거라고 예상한 덕에 다른 곳에서 벌이를 많이 찾은 결과이기도 하다. 올해 본 오디션 중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진행됐고, 많은 에이전시에서 방문을 제지했다. 나처럼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는 대신 비즈니스를 해줄 매니저가 없으니 스스로 일을 구하러 발로 뛰지 않으면 백수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더 많이 움직이게 했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계속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일 년째 계속해서 나가는 기초 생활비로 모아둔 돈을 쓰며 줄어드는 잔고를 쳐다만 보고 있다. 적극적으로 일을 구하러 다녀도 욕을 먹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의 삶은 다를 것이다. 지금 벌지 않으면 오늘 저녁을 굶어야 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바이러스로 죽든 굶어 죽든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로 분노한 사람들의 폭주와 포기가 두렵다. 언제까지 이 사태를 지켜만 봐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하며 마스크를 잘 쓰고 되도록 집에 붙어있는 일뿐이다. 

  마음을 편히 먹고 싶어 자고 일어나 음악을 틀고 차를 마신다. 어제 읽다 만 책을 마저 읽으며 영혼을 충만하게 하려 하지만 어딘가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하다. 학자금 대출비와 휴대폰 요금이 빠져나갔다는 문자가 날아온다. 며칠 뒤에 월세를 내야 하고, 나는 일을 구하지 않고 집에 머무른다. 지금 당장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책 속의 활자들이 허공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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