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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Dec 30. 2020

2020

  한 해가 훌쩍 지났고 그 마무리를 하기 위해 오늘도 앉아서 글을 쓴다. 글을 자주 쓰는 덕에 배우로서의 정체성이나 영향력을 잃을까 걱정해주는 이들의 격려를 들으면서 또 글을 쓴다. 사람들의 조언과 충고가 귀에 들어올수록 더욱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야겠다는 확신이 명확해진다. 그런 조언들은 대개 과거의 성공 사례를 가져오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누군가가 이미 살아간 삶을 답습하려는 것이 아니다. 통계적으로 오직 그런 사람만이 성공했다고 한들 그 길을 따라가려다 내 삶을 잃는다면 차라리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다 가는 편이 낫다. 

 인생이란 결국 각자가 가진 현미경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보며 살아가는 일이다. 누군가는 고층 빌딩의 꼭대기를 바라보며 부와 성공을 꿈꾸기도 하고 누군가는 빼곡한 건물 사이에 피어난 들풀 한송이의 의미를 찾으며 평생을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단어에 천편일률적인 관점을 주입시킨다면 사람들의 삶은 매우 단조로워진다. 그리하여 살아가는 방식이 모두 비슷해진다면 세상이란 단어는 곧 의미를 잃을 것이다. 우리는 만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 내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거창한 예술가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기죽지 않는다. 예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현대인들만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들이 누구에게도 의미가 되지 못하고 사라질지언정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꿋꿋이 해나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적인 삶이다. 

  동생에게 생활비를 받아가며 그림을 그렸던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가치를 인정받았듯 한 사람의 인생은 생전에만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죽고 나서야 가치를 인정받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하는 이도 있겠다마는, 예술가들의 삶은 가치를 증명하는 것을 뛰어넘어 갖고 있는 어떤 생각을 외부로 실현시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강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함부로 정의할 수는 없다. 예술이란 어떤 일이든 경지에 다다를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힘까지 폭넓게 작용한다. 그렇기에 일개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 소설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평생 가난과 싸우며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다 죽어간 기구한 삶의 넋을 예술로 기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 개개인의 삶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이 아니고서야 어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본래 유혹에 빠지기 쉬운 동물로 살아있는 내내 욕망과 맞서 싸워야 한다. 수면욕과 식욕 같이 기필코 피해 갈 수 없는 욕망들을 맞이하며 해야 하는 일이나 하고자 하는 일에 분투한다. 하잘 것 없는 나태나 헛된 욕망도 인간임을 증명하는 일이니 그 또한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인간의 애달픈 생은, 꾸준히 살아있는 노력을 통해 허무한 죽음을 피해 가며 삶을 예술의 경지로 이끄는 것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공전 주기로 한 해를 구분해놨지만 내년이라는 것은 불과 며칠 뒤일 뿐이다. 물리학적 시간과 자연적 시간 같은 객관적 시간의 의미를 넘어 개인의 시간으로 가져와 현재와 지금에 최선을 다 하는 일이 내가 죽음을 멀리하고 생명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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