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모운 Jan 09. 2021

개인의 의미

1  

  두 번째 책을 내고 싶지만 써놓은 글의 내용들이 첫 번째 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 글 안에 담긴 고민은 저마다 조금의 개성이 있지만 얻고자 하는 목적이 변함없으니 차도가 적은 사유들이다. 

  어떤 현상을 증명하려는 과학자가 평생을 연구에 매달리듯 비슷한 실험을 반복한다.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연구를 멈출 수는 없다. 오랜 시간 관심을 갖고 시간을 투자해 온 이 일이 개인의 존재 증명과 연결된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과학자의 삶과 달리, 글을 쓰고 연기하는 개인적인 일쯤 중도에 포기한다 해도 세상에 절망은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성공해도 인류의 발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내 인생이 곧 세계고 우주다. 내가 없는 우주는 타인의 우주이며 개인의 우주를 완성하는 것은 인류의 흔적이 된다. 77억의 인구가 비슷한 인생을 살았을지언정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삶을 산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개개인의 개성이 존중받고, 지극히 개인적인 삶도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나의 우주를 완성시키려 개인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다. 


2

  타인이 내 삶에 침범해 도움을 주거나 훼방을 놓는다고 해서 삶의 전체를 내줄 수는 없다. 일말의 시간을 내어주거나 훗날 보답할 수는 있겠지만 타인의 영향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타인의 간섭에 내 삶이 휘청거릴 필요가 없다. 타인의 간섭이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심하게 의존하거나 개인의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은 곧 전이될 암덩어리에게 삶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소중히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3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활발한 활동을 위한 적극적인 비즈니스도, 열정을 도모할 친화적 만남도 줄었지만,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개인을 살피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최소한의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걱정만큼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전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발전하는 시간을 최대로 확보하는 것이 성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책장 속에 묵혀있던 좋은 소설을 꺼내 읽고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며 감탄하는 것이 친구들을 만나 똑같은 고민을 도돌이표처럼 털어놓는 것보다 큰 힘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창작물들은 하나의 메시지만을 담고 있지 않다. 보여지는 것의 이면에 감춰진 가치로 유혹하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종용한다. 선택의 기로에 놓여 고민하다 보면 어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지 조금씩 명확해진다. 그 결정은 내면의 결정이며 타인에게 뱉어내지 않아도 되는 비밀스러운 결심이다. 그렇게 걸어간 길은 누구의 조언이나 충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자기 확신적이다. 개인의 확신으로 얻는 성과는 그 무엇보다 뜻깊고 자존 의식을 높여준다. 연대가 주는 기쁨과는 다른 종류의 개인적 보람이다. 


4

  어떻게 살 것인가,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같은 자조()적인 질문들이 내 삶의 원천이다. '왜'라는 질문의 답은 단순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발전을 위한 관조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대소(大小)를 불문하고 의미를 짚어가며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 지나가는 오늘을 충만하게 만든다. 

  그런 이유로 자기 성찰적인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는 타인에게 옳고 그름을 묻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삶을 정돈하고 다음 걸음을 밟아가려는 다짐이자 결심이다. 때로는 자기 계발을 촉구하는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저 멀리 있는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선 자주 다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질문의 더미 속에서 개인의 특수성을 집요하게 좇는다. 나만의 방향과 방법으로 오롯이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와 해방을 찾을 수 있다.    


5

 인간에게 완벽이란 단어는 통용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았을지라도 사적으로 내밀히 살피면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도 고독에 몸부림 칠 수 있고 저명한 지성인도 만물을 깨닫지 못함에 자해(害)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명예로운 위인도 가정에 불화가 있을 수 있다. 가진 것에 보람을 느끼되 끝내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며 죽어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만족의 척도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완벽의 의미는 수도 없이 다양해진다. 

 그러니 나는 개성을 살려 개인적인 만족의 척도를 설계한다. 일, 성공, 명예, 부, 사랑, 건강, 가족, 우정, 지성, 미, 도덕성 등 수많은 가치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밸런스를 조율하며 밑바닥부터 건축해나간다. 부실하게 쌓인 벽은 가끔 무너뜨리기도 해야 할 것이다. 벽의 일부를 손 보려다가 벽 전체를 허무는 일도 간혹 생기겠지만 베이스가 튼튼하다면 다시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혹여나 완공하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미와 기능을 지녔다면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층 아파트를 지었더니 다음 날 더 높은 아파트가 생긴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일에도 나름의 최선과 보람이 있겠지만, 더 높은 아파트를 새로 쌓는 것보다 나의 가치와 신념이 스며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건축물을 만드는 삶을 살아가려는 것이 나의 결심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