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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Dec 19. 2020

뒤늦은 학구열

학창 시절 공부를 덜 한 탓인지 뒤늦게 학구열이 불타 오른ᄃ. 왜 이리 궁금한 게 많은지 밤낮으로 메모하고 공부하기 바쁘다.  어려서 공부해두면 나중에 편할 거라던 선생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 파장이 서른이 어 올 줄 몰랐다. 대학에 갈 때도 연극영화과 진학에 필요한 과목에 집중하느라 그 외 과목엔 소홀 했다. 대신 하루 종일 연기학원에 기둥을 박고 연습을 ᅵᆫ 했지만 고3 전까지는 가리지 않고 공부를 좀 해둘 걸 후회가 크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영화의 영향이 크다.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가 목표가 아니라 세상을 두루 이해하는 능력이 높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온 나는 세상을 두루 이해하기는 커녕 영화 한 편을 보고 배우들의 연기 말고는 영화에 대해 달리 할 말이 없는 무지한 배우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지한 배우가 되지 않ᄀ 위해 대학에서 전공수업보다 교양수업을 많이 들었다. 열심히 출석하고 리포트를 제출하는 타과생들에 반해 소극장에서 망치질을 하며 밤을 새우거나 학교 앞 남산마트라는 가맥집에서 최민식이 최고냐 송강호가 최고냐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밤을 새우는 일이 더 많았잔, 꾸준히 철학이나 문화 관련 강의들을 수강했다.  문제는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도 역할의 직업군이나 연기적 철학에 대해서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니 셰익스피어니 안톤 체호프를 신격화해가면서 희곡 속의 세계관이나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ᅵ하기 짝이 없었다. 고작 해야 교수님이 설명해주시는 시대적 상황과 리포트로 제출해야 하는 연출가의 생애와 업적 따위를 요약했을 뿐, 왜 이런 작품이 세상에 나와야 ᅢᆻ는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작품들을 다루면서 인간 군상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이유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희 좀 읽었다는 인간이 하는 일이라고는 누군가 해골이라도 들고 있으면 남들이 원효대사냐고 물을 때 셰익스피어냐고 농을 던지거나(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는 햄릿이 해골을 들고 고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봄에 벚꽃이라도 휘날리면 영화학도들이 <4월 이야기(이와이 슌지)>를 이야기할 때 <벚꽃동산(안톤 체호프)>이야기를 하며 "내가 샀습니다. 내가 샀다고요!!"라고 주인공의 대사나 따라 하는 수준이랄까(몰락한 귀족이 경매로 내놓은 벚꽃동산을 그 집안 농노의 아들로 태어난 로빠힌이 구입해 자신이 샀다고 외치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수박 겉핥기식의 겉멋을 지니고 사회로 나온 나는 한 동안은 아는 척을 하는데 제법 유용하게 써먹었지만, 작업을 거듭하고 많은 연출가나 감독을 만날 때마다 깊이의 벽에 부딪혔다. 과연 작품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인물을 이해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 사실이 부끄러워 그 뒤로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인물 못지 않게 작품을 분석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 결과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작가나 감독이 왜 나라는 배우를 캐스팅했는지, 이 인물을 어떻게 그리고 싶은지 등이 조금씩 보였고, 의미 있는 궁금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준비한 작품에 비해 대본을 받는 순간부터 촬영 전까지 분석을 마쳐야 하는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고, 작가나 연출만큼 작품 전체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어렵겠지만, 그만큼을 따라가려는 피나는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제작진 입장에서는 연기 하나만이라도 똑바로 하길 바라겠지만. 때로는 직관이나 충동에 의한 즉흥적 흐름이 최고의 분석이 될 때도 있지만 맡은 역할의 고달픈 인생사를 깊게 들여다보면 예의상이라도 그의 삶을 충동 하나로 대신 살아낼 순 없다. 그러니 결국 예민하게 접근하고 같이 아프고 기뻐해 봐야겠지.  외국 영화에 뜨는 자막을 보고 멋진 대사라며 감탄했는데 번역이 잘못됐다는 기사를 보면 비참하고, 슬픈 사극을 보고 가슴 아파했는데 역사 왜곡이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고 산다면 세상에 떠도는 엉터리 기사가 번복될 때마다 입장을 바꾸기 바쁠 것이다. 그러니 팩트와 픽션을 적절히 구분하고 오류 없이 직선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과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연기로 이제 좀 먹고살려고 했더니 해야 할 공부가 또 태산이다. 그래도 어쩌랴, 내 밥벌인데. 오늘 공부로 내년에 밥 좀 더 벌어 먹고 살 수 있다면 엉덩이 붙이고 한 자 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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