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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Dec 19. 2020

"이럴  라면 스프가 답입니다"

  국물 요리를 하다 맛이  나면 넣는 마법의 가루, 라면스프. 나는 라면스프가 너무 싫었다. 라면을 쌀밥보다 많이 먹는 나지만 다른 요리를 하다가 맛이  난다고 라면스프로  치는  싫었다. 여태 간장, 고추장, 소금, 후추, 설탕  섞어가며 원하는 맛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라면스프라니.
  친구들이 집에 놀러   번도    찌개를 끓여달라고  때도 절대로 라면스프를 넣지 않았다.  요리가 맛이 없지 가오가 없는  아니니까. 그게 무슨 학생단편영화 찍다가 영화가  풀린다고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꼴인가.

  백종원 아저씨가 소주컵으로 정확하게 계량을 해주기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카오스에 빠져 간을 맞추지 못하던 시절의 나는 온갖 장과 소스류를 꺼내놓고  방울 ,    넣어가며 간을 맞춘다. 맞추다 보니 국물이  쫄아서 다시 물을 붓는다. 붓고 나니 간이 다시 싱겁다. 약불로 바꾸고 다시 간을 맞춘다. 거의 모든 요리가 어딘가 깊은 맛이 나지 않았지만 다시다도 미원도 집에 두지 않았다(과학적으로 미원이 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불만이 있을  있으나 이건 미원을 향한 비난의 의미가 아니다).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다시다와 미원 같은 조미료를  다뤘다면 지금 요리 실력이  배는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조미료 맛을 싫어하는 친구들은 짜면서도 가벼운  요리를 맛보고 조미료 맛이  나서 좋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편법으로 구십 점을 받느냐, 정공법으로 칠십 점을 받느냐 하면 나는 칠십 점을 받는 것이 좋았다.

  나라고 편법을 쓰지 않고 살아온  아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 많은 일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눈치가 빠르고 얕은 수작을  부렸다. 요란한 말재간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행동은 그와 다른데, 그렇게  데에는 어릴   사건이  역할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귀찮은 일을 시키셨는데, 다른 친구들은 대충 흉내를 냈을  꾀를 부리지 않고 시킨 그대로를   적이 있다. 돌아오신 선생님은 검사도 하지 않고 모두 수고했다며 우리를 집으로 보냈고, 나는 혼자만 열심히   같아 억울한 마음을 안고 하교했다. 하지만 다음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제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다른 친구들도 따로 불러 그런 말씀을 하셨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때 나는 하늘을  것처럼 기뻤다. 어른들은 우리 눈에  보여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구나. 그땐 이런 생각까진 못했지만 정직하게 행동하면 언젠가 보답이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그런 일은 살면서  차례  일어났고, 나의 믿음은 점점 강해졌다. 전력을 다했는데 졸전을 펼치는 것보다 부끄러운 것이 반칙을 해서 실격당하는  아닌가.

*
  언젠가부터 레스토랑이나 술집만 가면 무슨 요리든 온통 트러플을 위에 얹어준다. 처음엔 깊은 맛이 난다며 좋아하다가 너도 나도 트러플을 얹어 주니  느끼함에 지쳐버렸다. 좋은 식당을 많이 다니던  친구는 트러플 때문에 입맛을 버린다며 아예 트러플을 걷어내고 먹었다.

  분명 귀한 재료일 것이다.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값비싼 재료. 하지만  재료 없이 원래 음식 본연의 맛으로 승부하는 오래된 맛집들의 변하지 않는 맛을 기억한다.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우리가 원래 알던 음식의 맛이 나는 .
 아니면 어울리게 스며들기라도 해야 했다. 아무리 멋진 엘리베이터가 나왔다고 해도 피사의 사탑 한가운데 박아둘  없는  아닌가(라고 말했지만 에펠탑이나 개선문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좋은 예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좋은 맛을 선사하기 위해서 넣는 스프나 트러플에게도 임무가 있지만, 가끔은 맛이  덜하더라도 음식 본연의 맛을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즈음의  선택과 행동들도 너무  치며 살아가는  아닌가 싶어 생각이 많아진다.   

  ! 삶이란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이리 피곤하고 힘든지, 날이 추워지니 침대 속에 있는 시간은 늘어나고 귀찮으니 하는 일마다 대충대충이다.
  어렵사리 온수매트에서 빠져나와 아무리 바빠도 인생   치지 말자고 집을 나섰는데, 운전석 뒷자리 캠핑 박스 안에 들은 트러플 오일이 부끄러워 괜히 라벨을 뒤집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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