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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an 19. 2021

친구


친구 하나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일을 하진 않았지만 영화와 책,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다. 친구와 나는 몇 시간이고 좋아하는 영화와 책, 음악에 대해 떠들었다. 어느 장면이 좋았다던가,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 영화를 살렸다던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좋아하는 구절을 번갈아 읊어가며 놀았다. 주장이 확실한 성격인 친구는 좋고 싫음을 분명히 했다. 그 덕에 나도 편하게 좋고 싫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할 때 실례가 되진 않을까 눈치 보지 않아도 됐고,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에 거창한 이유를 들이대지 않아도 됐다. 한참을 떠들고 나면 같이 거리를 걸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바람을 쐬면서 지나가는 강아지들을 구경했고, 다리가 아프면 벤치에 앉아 구름을 보고 떠오르는 모양을 말하며 억지라고 서로를 놀렸다. 화제를 전환하려고 애써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 없이 아무 얘기나 꺼낼 수 있었다. 갑자기 미래에 뭘 하고 싶다던가, 죽을 땐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다던가 등의 이야기도 아무렇게나 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깊고 얕음이 리듬감 넘치는 재즈 연주처럼 흘러갔다. 우리는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적당한 요리를 하나 해서 저렴한 와인 한 병을 놓고 음악을 들으며 떠드는 것이 전부였다. 정말로 별 것 없는 날들이었지만 친구와의 대화는 내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걱정이 모두 사라지고 현재만이 존재하는 기분.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건 이런 걸까. 수다와 고요가 반복되어도 어색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서 까닥거리는 친구의 작고 하얀 손톱 소리가 유일하게 울려 퍼지던 결속의 시간. 마치 영원과도 같던 시간. 어떤 이유에선지 그 친구와 나는 연인이 되지 못했고, 이제는 연락이 끊겼다. SNS도 하지 않는 탓에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가 잘 살고 있을 건 분명히 안다. 그녀는 성공이나 부에 매몰되지 않고 항상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모든 기준을 지금의 자신에서 출발시키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비교나 질투 같은 것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반복하며 행복을 채워 나가는데 온통 신경이 가 있던 그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시절의 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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