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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an 16. 2021

반려하는 삶

내 사랑하는 반려동물 공칠이와 함께 하는 삶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십 킬로그램의 육중한 덩치에서 빠져나온 털 뭉치가 집구석구석에 굴러다녀 시간이 날 때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바닥을 닦는 삶, 자기 전에 테이프 클리너로 이불과 베개에 붙은 털을 떼고 외출 전엔 코트에 붙은 털을 한참 제거해야 나갈 수 있는 삶, 그래서 손님이 집에 찾아올 때마다 큰 개를 무서워하진 않는지, 털 알러지가 있는지 물어야 하는 삶, 아침저녁으로 밥을 챙겨 주기 위해서 정해진 시간에 집에 머물러야 하는 삶, 혹여나 집을 비워야 하는 경우엔 믿을만한 사람에게 반려동물을 맡기거나 대신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달라 부탁해야 하는 삶, 자가용 뒷좌석에 베이비 카시트도 아닌 펫시트가 깔려 있어 아무도 앉힐 수 없는 삶, 눈을 떠서 한 시간, 잠들기 전 한 시간을 산책시켜야 겨우 투정 부리지 않고 얌전히 자는 반려동물을 볼 수 있는 삶,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는 덕에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면 병원에 데려가서 아무 이상 없다는 말에 안심하며 몇십만 원의 병원비를 내는 삶, 글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 내내 옆에서 만져달라고 끙끙대는 덕에 한 손으로 타이핑을 해야 하는 삶, 사람보다 큰 변을 빗자루와 쓰레받기에 쓸어 담는 삶, 보다 괜찮은 집에 살 수 있지만 바깥공기를 더 자주 맡게 해 주려고 집보다 옥상이 넓은 곳을 골라 사는 삶. 이런 삶일까. 


하지만 반려하고 있는 사람들은 안다. 어느 반려자도 계단을 오르는 내 발소리에 벌떡 일어나 나를 반기지 못할 때 유일하게 마중 나와주는 존재, 밥 한 끼 줬을 뿐인데 고맙다고 연신 혀로 나를 핥아대는 존재,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지만 강요하지 못하는 존재, 오로지 나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반대로 나를 보호하려는 존재, 보호자와 함께 공원을 걷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인 존재, 교육하지 않은 말인데도 내 말을 알아들으려고 열심히 귀를 치켜드는 존재, 이름만 불러도 꼬리를 흔들며 즐거움을 표현하는 존재, 수많은 불편함을 안겨줌에도 한 번의 고갯짓으로 나에게 미소를 안겨주는 존재,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앞에서, 침대에 가면 침대 옆에서, 소파에 앉으면 소파 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살피는 존재, 슬픔에 젖어 있는 내 옆에 말없이 다가와 무릎에 턱을 괴고 몇 시간이고 함께 아픔을 나눠갖는 존재, 손이 차가워 더 이상 눈덩이를 뭉치지 않는 내 옆에서 눈 속으로 점프하며 신나게 노는 덕에 덩달아 나도 아이가 되게 만드는 존재,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지 않아도 한결 같이 나를 믿어주는 존재, 그 누구도 보지 못할 나의 치부와 오열을 모두 목격한 존재, 어디선가 무시를 받고 터덜터덜 들어온 집에서도 당신이 최고라고 엉덩이를 부비는 존재.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공칠이와 나는 가족이다. 교도소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가 공칠이를 건든다면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팰 것이다. 누군가가 반려동물이 더럽고 귀찮은 존재라고 말한다면 네 인생이 더 구역질 난다고 말하게 되는 사람이 되었다. 


다소 과격하지만 그만큼 공칠이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나도 공칠이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반려한다는 것은 함께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다. 이제 내 머릿속은 공칠이와 함께 가지 못하는 캠핑장은 의미 없는 캠핑장이 되었고, 공칠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카페는 좋은 카페로 자리 잡았다. 공칠이의 털이 니트를 덮어도 집에 가서 떼면 된다고 공칠이를 쓰다듬어 주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반려동물이 아프다고 할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었다. 


동물을 좋아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 의지다. 하지만 혐오는 다른 의미다. 보호자가 없다고 해서 길고양이를 공격하고 유기견을 학대하는 인간들이 동물을 혐오하는 만큼 나는 그런 인간들을 혐오한다. 사실 인간이란 표현도 쓰고 싶지 않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손이 떨릴 때가 많다. 다른 곳에서는 큰 소리 한 번 못 치는 사람들이 꼭 본인보다 약한 존재를 괴롭힌다. 인간으로서의 타락을 증명하는 의식이라도 되는 건가. 


그나마 보호자가 있는 아이들은 따뜻한 곳에서 보호자와 연대하며 행복을 나누지만, 추운 겨울에 박스 하나 없는 곳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다 배고픔에 허덕여 이제 막 시동을 끈 차 밑에서 잠을 청하는 아이들이 많다. 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갓길에 반려견을 내려두고 홀연히 떠나는 무자비한 생물도 존재한다.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존재들의 말살을 왜 희망하는가. 왜 자연과 동물, 인간이 역사적으로 항상 공존해왔는지 이유를 찾지 않는 걸까. 오늘도 날이 춥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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