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모운 Mar 31. 2021

오늘도 열심히 살았지만

오늘도 열심히 살았지만 끝내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침대에 눕는다. 현재의 내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자면 해야 할 일이 끝도 없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지키지 못할 많은 양의 숙제를 스스로에게 내고 결국엔 못다 한 숙제를 내일로 미뤄가며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한 탓에 잠에 들 때는 꿈자리가 불편하고 아침에 눈을 떠서는 마음이 초조하다. 


욕심을 버리고 할 일을 줄이자니 여태 이루지 못한 젊음에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차라리 한 시간 푹 쉬고 나면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하니 그렇지도 않다. 일에도 휴식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해보지만, 텅 빈 머리로 단순 업무를 하다 보면 오늘도 창작하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스럽다. 


왜 열심히 살려고 하는 걸까. 열심히 사는 인생에 어떤 보상이 있을까. 만약 그 끝에도 보상이 없다면 열심히 사는 인생은 그만큼의 의미를 갖지 못할까. 


오래도록 꿈꾸고 희망하던 것을 얻으려는 마음, 그간 밟아온 길과 살아가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의지, 살아가는데 위로와 원동력을 주는 많은 존재들에 대한 감사와 보답 같은 이유들로 열심히 살아간다. 

이런 이유들은 때로 덧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탄생과 죽음이 생 안에 반드시 존재하듯 삶에서도 의미와 허무를 분리할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무의미할 인생일지라도, 아직 정의되지 않은 수많은 가치와 뜻을 알 수 없는 사건이 넘실거리는 바다 한가운데서 무엇이 진정한 구명조끼인지 선별해가며 목숨을 유지해나간다.  


살면서 결과로 증명하는 것처럼 쉽게 내 인생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다. 하지만 결과라는 건 자주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어딘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에게 다가오곤 했다. 원하는 나이에 원하는 수준의 삶을 얻으려던 희망은 몇 번이나 무너졌고 나는 성공보다 패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수십 번 패배하고 탈락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긍지와 끈기로 삶을 연명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이 나의 증명이 되었다. 업적보다 성장과정이 더 긴 자서전처럼 딱히 이룬 일은 없지만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가 흥미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결과에 집중해야 할 때와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하는 순간 또한 무한히 반복되지만, 힘든 여정을 공유하다 보니 날 도와주려는 사람과 응원해주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려서 경쟁심이 심할 때는 적이 많았다. 내가 제일 잘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눈빛을 여기저기 발사하며 나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의지 자체가 높았던 그 시기는 실력을 발전시키기에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외로웠고 인생이 즐겁지 못했다. 성공한다면 주변에 누가 많겠지만 실패한다면 모두가 떠나갈 것 같은 불안감을 껴안고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방향은 서서히 변해갔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열심으로 타인과 비교하거나 지나치게 경쟁하지 않고 주변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걷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좋은 동료들을 곁에 두고 함께 이룬 일로 시간이 지나도 함께일 수밖에 없는 유대감으로 성공을 맞이하고 싶다.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개별성을 발견하다 보면 나만의 것이 또 생긴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적인 목표를 만들어가며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끼워 그림을 그려본다. 


사람마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방법은 다르다. 새가 비행을 할 때 뒤를 돌아보지 않듯이 앞만 보고 달리며 빠른 속도로 골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디언들이 길을 가다 가끔 뒤를 돌아보며 영혼이 따라오는 시간을 갖듯이 마음을 챙겨가며 나아간다면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과정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누는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이 따로 없다. 때로는 이뤄낸 현실보다 꿈이었을 때의 상상이 더 즐거운 법이다. 꿈 한 점 떼어먹으며 내일도 살아가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정말 먼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