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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9. 2021

정말 먼 곳

  얼마나 멀리 떠나야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 밀물처럼 차오르는 두려움이 예고 없이 나를 집어삼킬 때, 파도에 휩쓸려 이곳저곳에 치이다 마침내 바다 끝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주인 없는 튜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저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거창한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고 많은 걸 누리겠다는 욕심도 없이 사랑하는 몇몇과 함께 소소하게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을 뿐인데,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야속한 세상 앞에서 무릎 꿇어야 하는 시간이 나를 도망치게 한다.  

 공포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 끊임없이 상상해 왔다. 최악의 상황을, 차선의 방책을. 복싱선수가 쉐도우 복싱을 하듯 혼자서 적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지키는 훈련을 해왔지만, 두 주먹으로 상대하기엔 너무나 높은 세상의 벽 앞에 무력함이 드러날 때엔 더 이상 주먹을 뻗을 필요도 없다. 


 그럴 땐 멀리 떠나는 수밖에 없다. 현생에 있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홀연히 떠나는 수밖에. 어쩌면 모든 걸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의 빈 가방이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하지만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삶을 하나하나 뜯어고치는 것은 암흑 속에서 손을 더듬어가며 고장 난 물건 더미를 하나씩 수리하는 것보다 어렵다.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온 인생이다. 

  떠난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여기서라면 행복할 수 있겠지. 더 이상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지키려 했던 것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나를 괴롭히게 되고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평판 만으로 죄인이 되기도 한다. 

  모든 걸 씻어내고 고요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떠난 아득히 먼 곳, 그토록 멀고 조용한 곳에서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우리는 이미 세상에 지배되어 버린 걸까. 아름다운 풍경 속에 고독하게 서 있는 사람은 유난히 더 외롭고 슬프다. 

  어쩌면 무해한 자연을 벗 삼아 뛰어노는 아이가 더 건강하게 자라날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상처 입지 않으며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란다. 언젠가 세상 속으로 뛰어들 아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미래는 쏟아지는 폭설처럼 찬란하고도 막막하다.

 미래의 답은 알 수 없지만 어떤 삶을 선택하더라도 행복과 결핍은 동시에 머무른다. 완벽하지 않은 인생 앞에서 태연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그러니까 가끔은 멀리 떠난다.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쉬며 다시 빠져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결국엔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그곳일 테니까. 


 지난여름 지독히도 지쳐 떠난 사근진 해변에서 나는 오로지 먼 곳만 바라봤다. 의미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저 먼 곳에 무엇이 있을까. 저기가 끝인 것 같지만 사실 끝이 아니겠지. 하지만 가보고 싶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은 저곳에 도달하고 싶다. 저 먼 곳에 무엇이 있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냄새를 맡고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 그것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될 지라도 직접 경험해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끔 떠난다. 답을 얻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도착한 그곳이 목적지가 아닐 수도 있다.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바라보자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길을 잃고 땀에 흠뻑 젖는 먼 여정이 되겠지만, 정말 먼 곳을 바라보며 한 발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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