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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6. 2021

반복되는 정체(停滯)에 관하여

  반복되는 정체로 인해 다시금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르며 불안에 잠식되는 시간. 작년에는 운이 좋게도 광고모델 일이나 오디오 콘텐츠 사업, 그리고 생일을 기념으로 출간한 책이 제법 팔려 예상외의 수입이 생기며 숨통을 트는 한 해를 보냈다. 더 이상 가난을 겪지 않겠다고 각오하며 통장 잔고의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그 밑으로 떨어지면 무슨 일이든 하러 나갔다. 


  그렇게 나름의 여윳돈을 마련해놓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해가며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생활하는 데는 딱히 필요한 게 없었고, 운동이 끝난 뒤 요리해서 먹는 한 끼의 식사와 와인을 즐기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큰 지출이기에 돈이 부족하면 술을 줄이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수입이었다.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일은 더 늘었지만 개런티는 그만큼 줄었다. 친분이 있는 분들의 섭외 전화가 많다 보니 개런티가 적은 건들이라고 거절하기 어려운 점도 한몫했다. 그럴 때마다 꾸준히 일하고 새로운 영상을 계속 만들어내는 데에 의미를 두고 일했지만, 몇 번의 촬영을 하고 와도 통장에 여유가 생기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든 것이다. 


  꾸준하고 안정적인 일을 선택하자면 연기레슨이 좋은 선택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따금씩 레슨생을 받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레슨을 꺼려하는 성격이다. 연기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한 번 가르치기로 마음을 먹으면 대충 하는 법이 없는 성격이어서 그렇다. 개개인의 개성을 죽이지 않고 매력을 증강시키면서 인성 교육까지 할 수 있는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이 학생의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앞에서 열연을 펼치는 학생을 보고 있으면 그런 선생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좋은 배우를 양성할 수 있다면 선생이란 자리는 탐이 나기도 하지만, 아마도 선생 일은 조금 더 나이가 먹으면 그때 본격적으로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겠다는 다짐 하나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한다. 당장 나가서 아무 일이나 한다면 돈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다른 일로 에너지를 소비하느니 집에서 글을 한 줄 더 쓰겠다는 욕심이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든다. 물론 길에 나앉을 수준의 잔고가 남으면 어련히 알아서 나가 일을 찾겠지만, 아직은 안전하다는 스스로의 점검일 수도 있겠다. 그럼 이렇게 쓰는 글도 결국 푸념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푸념을 쏟아내는 이유의 포인트는 걱정이다. 한동안 일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불안, 예정되어 있는 지출은 많지만 예정되어 있는 수입은 없는 상황적 대비, 섭외 전화가 오지 않으면서 낮아지는 자존감, 그런 두려움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제작하던 프로젝트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정신적 분산. 

  사실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몇 번의 가난을 번복한 사람은 벌이가 없어질 기미에도 지레 겁을 먹는다. 돈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강박은 부자가 되면 사라질까. 아마 나란 사람의 성격 상 부자가 된다 해도 대단한 사치는 못할 것 같다. 적당히 먹고사는 것 외에 뭘 누려야 할지 모르면서 살아가겠지. 

  어쨌거나 돈이 없다고 푸념하면서 부자가 되면 뭘 할지 상상하며 김칫국을 마시는 극단적인 성격 덕에 오전에 했던 걱정 사라지고 오후엔 희망차게 웃는다. 적당한 걱정은 다가올 위험을 미리 대처하는데 효과적이지만 지나친 걱정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영혼을 어둠 속으로 끌고 내려가는 행세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하루를 살아내는 수밖에.  

  돈, 진짜 대단하다. 평생을 괴롭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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