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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13. 2021

단순한 최선

 문제를 해결하려고 깊이 고민해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때면 삶이 마비되곤 한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할 때면 되도록 단순하게 산다. 


 마음의 압박이 심하면 하는 일마다 실수가 된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평소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이상한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니 현재에 집중하며 묵묵하게 할 일을 해나가야 한다. 


 평소보다 오래 자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 집안일을 한다. 설거지, 빨래, 청소기 돌리기, 책장 정리 같이 몸에 깊숙이 벤 일을 하며 생각을 비운다. 서랍을 열어 필요 없는 것들을 몽땅 내다 버리며 소중한 것들만 남겨둔다. 


 주짓수를 즐겨하지만 가끔은 혼자 하는 운동이 좋을 때가 있다. 후드티 하나 걸치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달린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가파른 숨이 목에 차오를 때까지 빠르게 뛴다. 거친 숨을 한참 내쉬고 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표준의 상태. 


 따뜻한 물로 오랫동안 몸을 적시고 정성스럽게 스킨과 로션을 바른다. 별 차이는 없지만 평소와 다르게 가르마를 타 머리를 말린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좋아하는 셔츠 한 장을 가볍게 입고 집을 나선다. 


 예정돼 있던 스케쥴은 아니지만 급하게 구해서라도 일을 한다. 급하게 구한 탓에 딱히 내가 할 일은 없지만 되도록 열심히 한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곳에서 받는 칭찬을 즐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좋아하는 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잘할 수 있는 일로 자존감을 높인다. 


 도움을 준다는 사람이 부른 자리에 가서 술을 따르고 따라주는 술을 마신다. 낯 뜨겁지만 계속해서 칭찬을 해주는 사람과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 사이에서 겸손하게 굴지만 절대 소심해지지 않는다. 


 연기는 잘하냐는 질문에 잘한다고 대답한다. 어릴 때처럼 지나치게 겸손을 떨기에는 너무 많이 늦었다. 이 나이쯤 돼서 실력이 없으면 그것도 문제다. 겸손을 떨 시간에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편이 낫다. 만날 때 못 받았던 명함을 자리가 정리될 때야 겨우 받으며 내일 연락 달라는 말에 고개를 숙인다. 


 어른들을 모두 보내드리고 혼자 남으면 그제야 한 숨 돌린다. 앞에 멈춰 선 택시를 뒤로 하고는 터덜터덜 집으로 걷는다. 긴장이 풀리니 친구들이 생각나 괜히 돌아가며 안부전화를 건다. 어떻게 지내냐, 똑같지 뭐. 그래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 다들 힘내자. 


 매번 똑같은 대화, 별 일 없지만 항상 최선의 끝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최선을 다해 매일 반복된 삶을 살기에 별 일이 생기지 않는 걸 지도. 여기서 더 안 좋은 상황을 맞이해서는 안 되니까. 어쩌다 다가올 기회와 행운을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 사람들에게 응원한다는 말 한마디를 던짐으로 나도 응원 한 마디를 건네받는다. 


 아쉬운 마음에 편의점에 들러 사온 맥주는 뜯어보지도 못하고 소파에서 잠이 든다. 유난히도 바쁘고 치열하게 보낸 하루, 좋아하는 영화 한 편에 맥주를 곁들여 혼자만의 시간으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하루의 체력이 다 했다 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 새벽. 소파에서 잠이 든 탓에 내 옆에 누워 같이 자고 있는 반려견 공칠이를 쓰다듬고는 늦은 샤워를 한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가 이불을 턱 끝까지 덮는다. 

  잘 살고 있는 거겠지. 잘하고 있어. 내일도 열심히 살자. 잠꼬대처럼 스스로 되뇌며 다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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