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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y 07. 2021

캠핑이 주는 낭만에 대하여 1

  7년 전 어느 날, 캠핑을 자주 가던 형을 따라 산으로 떠났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불길을 흔드는 바람을 막아가며 음식을 만들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최대한 평평하게 만들어 그 위에 텐트를 펼친 뒤 침낭 속에서 잤다. 화장실과 개수대가 멀어 물을 뜨러 가거나 볼 일을 보러 갈 때도 먼 거리를 걸어가야 했고, 캠핑이 끝난 뒤에는 쓰레기를 모두 챙겨 집으로 돌아가 분리수거해야 했다.   

   나는 불편했던 기억 때문에 그 뒤로 캠핑을 자주 따라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니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캠핑의 즐거움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그런 의미로 지금부터 캠핑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캠핑의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고의 이유를 뽑자면 단연 도심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삭막한 회색 도시, 꽉 막힌 도로, 분주한 사람들, 지친 표정들. 자본과 유행으로 칠해진 도심 속을 거닐다 보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지치곤 하는데, 그럴 때면 모든 걸 접어두고 잠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친구와 함께 떠나는 시간이 많지만 때로는 고집스럽게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세상에 휩쓸려 갈 때, 나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휘둘릴 때, 내가 하고 싶은 일 대신 누군가가 원하는 일로 시간을 채워 결국 나의 스트레스는 해소하지 못할 때.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죄 없는 주변 사람들을 괜히 미워하게 된다. 떠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되도록 사람이 적은 곳,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오로지 풀, 나무, 흙, 물 같은 것들만 존재하는 곳을 찾아 떠난다. 


  사람마다 캠핑 스타일이 다른데 나는 미니멀 캠핑에 가깝다. 작은 텐트 하나와 타프를 펼치고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 두어 개를 꺼내놓으면 끝이다. 거기에 밤이 되면 어둠을 밝혀줄 조명 몇 개와 조리도구, 작은 아이스박스에 넣어 온 식재료와 술이면 하룻밤은 거뜬하다. 처음에는 없는 게 없는 맥시멀 캠퍼들을 부러워했지만 사이트를 구축하고 철수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는 걸 보고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휴식시간을 최대한 보장받는 것이 내 캠핑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밤이 찾아오기 전에 여유를 만끽해야 한다. 밤의 만찬과 술을 즐기려면 충분한 햇볕을 피부로 맞이하며 자연의 감상에 젖는다. 맥북을 펼쳐 글을 쓰거나 새로 산 소설을 읽는다. 뜨거운 햇살 아래 낮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언제나 완벽하다. 

  대체로 저녁은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스테이크를 해 먹는데 캠핑장에서 마시는 술과 음식은 신기하게도 술술 들어간다. 자연의 리듬에 맞춘 적당한 속도와 기분 좋은 알딸딸함이 달과 함께 무르익어 간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조명 몇 개를 켜놓고 장작을 때고는 불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다. 맥주나 와인을 홀짝홀짝 마셔가며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장작 타는 소리를 듣는다. 

  타고 있는 장작이 모두 재가 되면 잘 때가 되었다. 바람을 막아주는 텐트 안은 생각보다 훈훈하다. 낮은 천장 아래 겨우 몸을 누일 정도지만 생각보다 넓고 쾌적하다. 바스락 거리는 침낭 속에 들어가 반려견 공칠이를 꼭 껴안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약간은 울퉁한 바닥의 감촉이 군데군데 느껴지고 텐트 벽에 가까워지면 스며드는 시원한 기분이 생경하다. 편한 자세를 찾으려 몇 번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잠에 들어 있다. 


  생각보다 잠은 많이 자지 않는다. 어제 마신 술의 양으로 봤을 때 하루 종일 뻗어 있어도 모자라지만 새소리와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비니를 대충 쓰고 햇빛을 맞이하며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때고 남은 장작이 있다면 마저 불을 피워서 온기를 느껴도 좋다. 잠이 덜 깬 채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다 보면 스르르 다시 잠이 들기도 하고, 남은 청양고추를 모두 넣고 끓인 해장라면에 잠이 벌떡 깨기도 한다. 스마트폰에 남아있는 부재중 통화와 쌓여있는 메시지는 아직 확인하지 않는다.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마음대로 하고자 한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도시로. 그래도 가야지. 돌아가서 일 해야지. 돈 벌어야지. 철수를 하는데 땀이 뻘뻘 난다. 아, 근데 내가 매번 왜 이 고생을 하지. 왜 하긴, 낭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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