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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un 21. 2021

북토크를 마치고


어제는 다소 횡설수설하기도 했지만 던져주신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간추리며 북토크 내용을 정리합니다. 


1. 힘들 때 중심을 잡아줬던 건 무엇인가요? 


-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존재 증명을 위한 끝없는 노력, 호언장담 하며 내뱉은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주변에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쓰러지더라도 금세 일어납니다. 


2. 현실과 타협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하나요? 


-자주 타협합니다. 20대 때는 배우라는 꿈을 꼭 이루고 싶었기에 다른 직업군에 손을 뻗거나 아르바이트로 생을 연명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배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다릅니다. 꿈을 계속 꾸기 위해서 하는 모든 활동이 저에게는 값진 경험이고 어쩌면 슬픈 타협이 있었기에 더욱 굳센 의지가 생기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타협이 꿈과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타협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3. 약해질 때 이겨내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글쓰기일까요? / 낭떠러지 직전 본인을 끌어올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작은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자존감을 추켜세웁니다. 대단한 꿈을 꾸다 보면 이루는데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멀게만 느껴지고 꿈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자주 실망하곤 하죠. 그럴 때면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합니다. 설거지, 청소기 돌리기, 빨래 같은 단순한 일을 합니다. 글쓰기도 거창하게 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줄 쓰기를 통해서 하겠다고 다짐하면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일의 목록을 해치워 나갑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안기는 일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도 있겠지만 대체로 타인과의 관계, 사회생활 속의 갈등, 최선을 다 하고 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대비적 상황 등이 많습니다. 그러니 온전히 스스로 약속하고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일의 성취로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글쓰기 같은 경우는 순간적으로 동요하는 마음을 잡기에 좋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리 힘들고 화가 나는지 적어두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그 글을 보면 다소 옹졸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별 것도 아닌데 이런 걸로 그리 화를 내고 우울했었는지 고민해봅니다. 물론 길고 깊게 쌓인 우울이나 슬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겠지만, 아직 얕게 깔린 슬픔들은 최대한 빨리 회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글로 정리한 뒤 현재의 나를 인정하거나 날려 버립니다. 

 그리고 솔직히 실패 좀 하면 어떻습니까. 갑자기 저승사자가 목숨 뺏어가는 것도 아니고 짐승이 사지를 물어가는 것도 아닌데, 낭떠러지에 떨어졌다면 올라본 길이니 전보다 쉽게 오를 테고, 다른 길도 한 번쯤은 가 볼 수 있겠죠. 그 길이 어떤 인생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4.  2019년에 생각한 '창작의 힘'과 2021년에 생각하는 '창작의 힘'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2019년에는 대단한 '발명'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없는 영화를 만들고 세상에 없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혁명적이고 새로운 흐름이 들어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발견'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융합하고 분해하고 해체해서 다시 조립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얻는 창작, 혹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누군가 눈길을 주지 않아 외면당하고 있던 이야기에 창작의 에너지를 보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미 발명되어 존재하고 있으니 누군가 저를 발견하는 일만 남았겠죠. 


5. 관심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예술가들에게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관심이 내 기대보다 적어 우울한 마음이 심해진다면 어떻게 극복하는 게 좋을까요? 


- 저도 관심 좋아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글을 써서 책을 파는데 어떻게 관심을 싫어할 수 있겠어요. 연기와 글로 버는 직업이지만 인기를 통해 더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오늘 출간회에는 열몇 분을 모시고 있지만 스마트폰 연락처에도 사람이 많고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이것보다 훨씬 많으니 더 많은 손님을 기대하기도 하죠. 하지만 현실은 매번 그럴 수 없기에 저는 기대를 내려놓습니다. 저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있으니까요. 저희 형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현재를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나은 현재를 만들거나, 아니면 현재를 받아들이거나". 

 저는 현재를 극복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유명인이 되어버린 많은 동료들 옆에서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데 혼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순간이 많습니다. 그때부터 '내 것'과 '나 자신'에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순수하게 내가 가진 성품과 능력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그때의 제가 있게끔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베풀고 싶습니다. 


6. 가장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전율이 왔던 구절을 소개해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아멜리 노통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책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특히나 하루키의 <반딧불이>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책 반입이 안 되던 훈련병 시절에 형이 A4용지에 작은 글씨로 인쇄해 편지 봉투에 넣어 보내줘 밤마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펜 뒤에 달린 플래시를 켜가며 숨죽여 읽던 추억이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달과 6펜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가 나병에 걸려 살이 녹아가는 와중에 그림을 그리자 의사가 말리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물에 빠진 사람을 봤소? 그는 헤엄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소. 지금 내가 그렇소. 그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겠단 말이오." 라고 합니다. 

 저는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할 것 같지만, 한 번쯤은 그렇게 예술에 미친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기억에 남았고,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지하주차장에서 평생을 근무한 사람은 거기가 곧 세상의 전부야. 그 밖에 것들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인생은 거기까지라는 둥, 그게 끝이라는 둥 그딴 얘기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라고 말합니다. 인생에 희망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수업>,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김소연의 <마음사전>, 어제 말 못 했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밀란 쿤데라의 책 등을 좋아합니다. 


7. 혹시 종교가 있으신지?


-무교입니다. 굳이 성향이 맞다면 명상을 좋아해서 불교가 좋겠습니다. 


8. 최근 어떤 휴식과 성취를 겪으셨는지요? 


-저는 휴식으로 캠핑을 다닙니다. 전자기기나 사람들과의 단절, 자연으로의 귀화, 고요한 숲이나 강을 끼고 하는 캠핑에서 자유와 안정을 느낍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내일은 아마도 혼자 있을 예정입니다. 저는 만남 뒤에 홀로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남 속에 있었던 대화를 곱씹어가며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취는 최근 주짓수 시합에 나가 금메달을 따면서 느꼈습니다. 서른이 넘어 시작한 주짓수로 시합에도 나가보고 순위권 안에도 들 수 있다면,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많은 일들에 혹시 모를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노래도 배웁니다. 제가 잘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하고 봅니다. 대신 흥미를 잃고 재능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포기도 빠릅니다. 


어제 북토크에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즐거운 자리 마련해주신 가가77페이지에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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