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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ul 07. 2021

생일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탓에 매년 생일파티를 크게 해서인지, 한 해의 중간인 6월 30일이 생일이어서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준다. 

  한 번은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초대했다가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에게 인사만 하다 파티가 끝난 적도 있다. 그 뒤로는 감사한 발걸음을 해준 사람들이 허무하게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하고 싶어서 연극을 만들어 보여주거나 책을 내서 출간회를 열어 파티에 초대하는 식으로 대신했다. 그걸로 축하의 발걸음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끼리끼리 아는 사이가 많아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서로가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물론 불편한 사이가 마주치는 일도 있었지만. 


 올해는 바이러스가 심해져 도저히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없어 결국 파티를 여러 번 해야 했다. 몇 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내 생일을 함께 해준 사람들 몇 그룹을 나눠 만나야 했고, 지인들과 안면이 없는 사람도 있어 그들도 따로 봐야 했다. 며칠 내내 과분한 축하와 선물을 받는 것에 기쁘다가도 연달아 쌓인 숙취를 해소해야 할 때면 다음 생일은 좀 더 조용히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반복하며 한 주를 지냈다. 술이 깨야 그날의 약속에 나가 기쁜 얼굴로 축하를 받을 수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해장을 하고 숙취해소제를 챙겨 먹는 모습이 우스워 혼자 실실 쪼개기도 했다. 


  나이가 먹을수록 생일이 뭐 대수냐는 사람들의 말처럼 조용히 지나가면 좋으련만, 굳이 생일을 꼬박꼬박 거창하게 챙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말했다시피 생일을 기준으로 상반기와 하반기가 나뉘고, 매년 함께 하는 사람이 어떻게 같고 달라지는지, 작년의 우리와 올해의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서로 나누며 현재의 삶을 투사해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아직 곁에 많다는 것을 느끼고, 그러니 아직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볼 만한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힘을 얻어 훗날 이들에게 꼭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번 더 스스로를 도닥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내가 생일을 통해 얻는 선물이다. 

  

  일주일 간의 긴 생일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아무런 약속도 없는 날, 혼자 침대에 누워 축하 메시지를 다시 읽어봤다. '생일 축하해' 같은 담백한 축하부터 장문의 문자, 손편지까지 다양한 축하와 그에 맞게 또 답을 작성하는 나는 '응원한다'는 말에 유독 '열심히 살게'라는 답을 많이 했다. 아마 응원에 대한 보답이 열심히 사는 방법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까. 

  '잘 돼서 보기 좋다'라는 말이 얼마나 듣고 싶은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들어서는 전혀 기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소위 나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내가 말로는 가난해도 행복한 인생을 살겠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높은 목표를 꿈꾸며 사는지 알기 때문에 쉽사리 그런 말을 던지지도 않는다. 그들과 나 사이에 쌓여온 시간과 대화들이 언제 진정한 축하와 만족의 이야기를 건네고 받을 수 있는지 암묵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 순간이 오는 날 진정으로 오래 묵혀둔 샴페인을 터뜨리며 생일보다 더한 축하를 받게 될 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생일파티를 여는 일이 쑥스러워질 순 있겠지만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보다 후퇴하지 않기를, 작년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며 매년 파티를 연다. 축하해주는 사람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올해 생일에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내년 생일을 맞이하고 싶다. 잘 되든 못 되든 결국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엄마에게 낳아주고 길러줘서 고맙다는 전화 한 통을 넣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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