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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ul 09. 2021

추억

추억을 공유하는 일만큼 상대의 마음을 알아줄  있는 것이 있을까.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옆에 있는 사람이 기쁘고 슬펐던 순간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지키고 잃었던 존재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이다.


  우울해서 혼자 있기 싫다던 친구가 찾아오던 그날에 그가 우울할 때마다 듣던 음악을 틀어주고 옆에 앉아 술잔을 채워주는 일, 연기를 그만두겠다는 친구와 우리가 함께 영화관에서 보고 나와 감탄했던 영화를 나란히 앉아 다시 감상하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던 친구에게 술을 사주겠다고 유혹한 뒤 캔참치와 소주 두 병을 꺼내와 십여 년 전 그토록 가난해서 술을 사 마실 돈이 없던 우리가 먹었던 술자리를 선물하며 지금의 형편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알려주는 일, 친구 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그토록 닳고 닳게 들었던 친구 아버지의 멋진 시절을 다시 들어주는 일 같은 것이다.


  오랜 시간 옆에서 머물렀던 사람과의 시간은 때때로 따분하다. 딱히 변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끼고 결국엔 밤샘 술자리로 연결되는 생산성 없는 밤을 보내게 되기도 하지만, 더 나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 앞에 서있는 친구의 투정이 다소 지겨워도 옆자리를 묵묵하게 지켜주며 어디 가선 할 수 없는 험담이나 비난을 비밀로 묻어주는 일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나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도무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추억을 나눈 자가 안겨주는 감동이다.

  마음이 답답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하는 나에게 값비싼 호텔을 잡아주는 일 말고 내가 정말 사랑했던 추억의 장소로 데려다주는 일이 어찌 더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지내온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면 그 시간이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것이 추억의 역할이 아닐까.


  그리고 그걸 함께 나눈 사람이 내 앞에 있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주는 일, 나 혼자 흘리는 눈물이 청승맞지 않게 함께 겪은 슬픈 기억을 꺼내 울음을 나누어 내뱉는 일, 울다 지쳐 잠들고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식사를 하고 또 보자며 꼬박 하루를 내어주고 돌아가는 일, 추억의 힘, 추억이 해주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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