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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ul 20. 2021

감기

혼자 사는 사람이 아플 때의 서러움에 대하여 

감기에 걸렸다. 


나는 어려서부터 건강한 체질에다 약간은 둔해서 아파도 아픈 걸 잘 모르고 컸다. 


얼마나 둔했냐면 초등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중, 헤딩을 하다가 골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는 눈썹이 찢어졌었다.(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의 축구골대가 왜 위험하게 각진 사각형으로 만들어졌었는지 의문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공을 쫓아 뛰는데, 앞이 새빨개지면서 눈 앞으로 피가 분수처럼 한두 차례 뿜어져 나왔다. 


친구들은 이미 아연실색한 상태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까졌어?"라고 물어보며 수돗가로 가 피를 닦았지만, 애들은 '찢어졌다'며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한다고 했다. 


다쳐본 적도 없고 아파본 적도 없는 나는 살이 '찢어지고', 살을 '꿰맨다'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찌 됐건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에 룰루랄라 피를 쏟아내며 집에 도착해, 피범벅이 된 나를 본 엄마를 기절시킬 뻔했던 기억이 난다.


그 사건 이후로는 딱히 다친 적 없이 무탈히 성장했던 나는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이상하게도 매년 겨울이 올 때 즈음 한 번 씩 앓곤 했는데, 열이 39도를 넘어가는데도 "몸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가 친구들이 내 이마를 짚어보고는 두 번이나 응급실로 끌고 가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군대에서 맞이한 크리스마스이브 날 점호시간에 "저녁에 많이 먹었더니 체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쓰러졌는데, 알고 보니 맹장염에 걸린 것이었다. 


결국 크리스마스가 되는 날 부대에서 나와 대전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마취에 취해 잠들기 전까지 의사 선생님께 배를 찢는 고통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는 둥, 맹장을 잘라내면 꼭 수술이 끝나고 보여달라는 둥의 농담을 하다 잠이 들었었다. 


그렇게 심하게 앓던 순간에도 씩씩하게 농담을 했던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약해졌는지, 올해 초 왼쪽 발목을 다치고, 여름엔 오른쪽 골반을 다쳐 절뚝거리고, 이제는 환절기에 찾아온 감기몸살 기운에 힘이 하나도 없고 몸이 무겁고 침이 바싹바싹 마른다.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창피하고, 아무래도 술을 자주 먹는 탓에 면역력이 떨어진 건가 나를 꾸짖는 수밖에 없지 싶다. 


이렇게 아플 때면 아무래도 따뜻한 죽 한 그릇이 생각나는데, 이 놈의 죽집은 도통 찾으려고 하면 근처 죽 집은 일찍이 닫았거나 아픈 몸을 이끌고 가기엔 꽤나 먼 거리에 있어 결국 편의점으로 향해 그나마 제일 건강해질 것 같은 삼계죽이나 전복죽을 골라 집으로 돌아온다. 


인스턴트 죽을 먹어서 얼마나 건강해지겠냐마는 그래도 매콤 낙지덮밥이나 8첩 도시락 보다야 술술 넘어가니 별 수 없는 노릇이라, 죽을 한 그릇 비워낸 후 집에 있는 비상약을 꺼내 물과 함께 삼켜내고 푹 자는 게 나로서는 최선인 것이다. 


만약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도 전기장판을 꺼내 살이 데일 것 같이 뜨겁게 해 놓은 채,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려놓고 불가마 같은 장판 위에 누운 나를 적절히 군데군데 익히듯이 다리와 팔을 주무르며 밤을 지새우셨을 것이다. 


근데도 신기한 건, 너무 뜨거우니 제발 장판 온도 좀 내려달라고 징징 대다가도 잠에 들어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감기가 똑 떨어져 나가니, 결국 병을 빨리 낫게 하는 건 정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나에게 정성을 쏟기엔 몸도 마음도 힘드니, 지금은 타이레놀 두 알과 판피린에게 내일은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드는 수밖에.

-201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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