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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06. 2022

즐거운 과정

카페를 오픈한 지 벌써 육 개월이 지났다. 혼자 하기엔 벅찰 것 같아 친한 동생 재용에게 다짜고짜 카페를 열자 했고 '아스론가'라는 카페를 오픈하게 됐다. 아스론가라는 곳은 이십 대 때 같이 연극을 했던 동생들이 친구 하나와 오픈한 와인바인데, 낮에 영업을 하지 않으니 공간을 셰어 해서 쓰자는 제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급한 대로 커피 머신과 그라인더, 음료를 만들 재료들을 몇 가지 구매한 뒤 바로 오픈했다. 오픈을 했음에도 오픈 준비를 하는 느낌으로 끊임없이 메뉴를 개발하고 늘려 나갔다.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며 메뉴를 수정하고 늘려가다 보니 데이터를 쌓는 시간이 필요해 꽤 오래 걸렸다. 메뉴를 조금 늘리고 나면 계절이 바뀌어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을 준비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와인바와 시간을 나눠 써야 하다 보니 시간적 제한이 있어 높은 매출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골목 뒤 큰길에 있는 대기업의 직장인들과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프리랜서나 아티스트들만 방문해줘도 반은 성공이라 여기며 시작했다. 시장통 같은 분위기보다 우리의 공간을 사랑해줄 만한 사람들이 오래도록 앉아 여유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대중성을 갖춰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에도 아티스트들의 아지트가 됐으면 좋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여전히 함께 하는 동생들에게 돈은 대체 언제 벌 생각이냐고 쓴소리를 듣곤 한다.


내가 말하는 아티스트란 예술적 직업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아고라 광장에 모여 토론을 벌이던 지성인들처럼 다양한 대화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이토록 대화가 단절된 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직업군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교양 있는 대화를 나누며 예술과 문화를 교류하는 곳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혼자 와서 랩탑을 펼쳐놓고 작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반갑고, 삼삼오오 모여 영화나 음악 얘기를 하고 있으면 듣는 귀가 즐겁다. 대낮부터 와인을 마시자고 찾아온 친구와 카페를 마감할 때까지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즐거움도 카페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재미 중 하나다. 


아무래도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이겠지, 라는 나름의 객관적 평가로 프로다운 카페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 중인데 쉽지가 않다. 요즘 유행한다는 메뉴를 그대로 가져와 파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걸 파는 건 더더욱 참을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먹어보고 맛있다고 느끼는 것을 팔아야 하는 게 음식과 음료를 파는 사장의 일이 아닐까 싶은 이상한 사명감 같은 게 계속 마음을 툭툭 건드린달까. 


자존심을 굽히게 하는 것은 역시 매출의 추락이다. 바이러스는 계속 심해지고 설 연휴가 지나자 손님이 확 줄었고 주변 회사들은 재택근무를 하는지 거리에 사람이 영 다니질 않았다. 계속 이런 상태로는 유지가 어려우니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될 때가 왔나 보다 싶은 날, 어느 손님 한 분이 자식 자랑을 했다. 


"우리 아들이 카페를 하는데 거기는 장사가 엄청 잘 돼. 거기 가서 좀 배워봐" 


배우는 것은 좋은 것이다. 어느 카페에 가더라도 차이점과 배울 점이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아마 우리 가게가 그날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그런 말은 듣지 않았을 거다. 그날따라 유독 텅텅 빈 가게를 보고 걱정이 돼서 해주신 말씀이겠거니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던 찰나. 


"네, 한 번 가볼게요. 저희는 그냥 진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즐겁게." 


같이 하는 동생 놈이 팩트를 날렸다. 아, 맞다. 우리 재미있게 하고 있었지. 새로운 재료를 살 때마다 이렇게 만들어보고 저렇게 만들어 보면서 맛있으면 팔짝 뛰고 맛없으면 절망하고. 마치 연극 한 편을 만들 때의 우리처럼 엉뚱한 시도와 다양한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즐거움이었지. 


즐거움 대신 완벽함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카페가 되어야 할 날이 머지않았지만 우리가 겪는 어려움에 즐거움이 항상 동반한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힘들어 죽겠다고 엉엉 울게 만드는 연기도 재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십 년 가까이하고 있으니 못 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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