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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3. 2022

희망

  언제부턴가 염세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됐다. 대학생 시절 교양 수업으로 들은 '삶과 죽음의 철학'에서 쇼펜하우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쇼펜하우어는 죽음을 통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누구나 죽는다. 죽음을 거스를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삶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려 노력한다. 고난이 닥칠 때마다 죽음을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고통보다 죽음이 자유로운가. 죽음을 맞이하기에 앞서 삶에 후회로 남길 만한 희망이나 기쁨은 없었는가.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지만 탄생한 순간부터 무언가를 얻는 게 생명이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수만 가지의 만물을 오감으로 느끼며 성장한다. 자연스럽게 얻는 것도 있지만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얻는 것도 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는 점점 무언가가 된다.  


  그래서 항상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된지도 모르겠다. 끝은 허무할 지라도 현재 느끼는 감정에 충실해보면 군데군데 행복이 있다. 오직 살아서 개체성을 느끼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가 모든 퀘스트를 깨고 나면 더 이상 할 게 없다. 다른 캐릭터를 골라 다시 비슷한 과정을 밟아 보는 것 외에 달리 의미는 없다. 하지만 끝을 봤다는 사실에 흡족해한다. 포기하지 않고 그 이야기의 결말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어쩌면 반복되는 과정이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존 방식도 본능도 결국 반복으로 유지된다. 먹으면 배출하고 움직이면 자야 한다. 


  유한함을 알면서도 유한성을 느끼지 못하고 무한한 듯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삶이다 보니 종종 허무가 찾아온다. 고민은 뇌를, 행동은 신체를 피로하게 만든다. 피로가 누적되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다. 그래서 가끔 새로움을 시도한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이나 느껴보지 못한 정서를 느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탄생 속에서 또 다른 부화를 하며 원동력을 얻는다. 


   원동력에 절망하지 않으려면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 결정권자가 되어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단순히 재미로만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성장과 퇴화의 동물이라 퇴화하는 순간까지도 성장하려고 발버둥 친다. '살아있다'라는 느낌은 어쩌면 긴 인생 중 가장 활력이 넘쳤던 순간을 평생 기억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하고 절망한다. 희망이 가진 가능성과 상상력에 미치지 못하는 일마다 절망한다. 멈춰서 성찰하는 시간이 값진 성장으로 돌아오던 때와 달리 끊임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계속 반항심이 생긴다. 개성을 잃어가는 시간으로 내면의 풍요를 잃고 외부로부터의 습격을 대비한다.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삶에 조금 더 다가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버티고 또 버틴다. 


  절망과 희망은 바로 옆자리에서 서로 자리를 번갈아가며 삶을 차지한다. 이 둘을 다스릴 수 있다면 좋겠으나 마음 하나를 조율하지 못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게 인간이 지닌 숙명이니 그저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행복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평생 완벽하지 못할 인간의 비루한 삶이 애처롭다. 


  그래도 불행을 느낄 때마다 다시 행복을 갈구하는 되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힘을 얻는다. 행복을 향한 욕심이 존재하는 한 죽음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죽음이라는 선 바로 앞에 서서 몸을 비틀거리며 희망의 빛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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