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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Feb 04. 2021

뉴욕

꿈만 같던 뉴욕에 가다 

뉴욕에 가자고 형이 처음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별생각 없이 알았다고 대답했었다. 홍콩이나 일본, 라오스처럼 시간이 나면 사나흘 정도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적어도 나에게는) 마음먹고 떠나야 하는 곳. 게다가 꿈에 그리던 뉴욕이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티켓팅을 하고 떠날 때가 가까워지니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벌이도 변변치 않은 게 올해부터는 혼자 살아보겠다고 객기를 부려 독립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늘어난 지출로 주머니는 점점 비어 가고 있는 데다, 작품이라도 하나 끝내야 보상이라도 받는 심정으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텐데 현재로서는 그런 상황과 거리가 멀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여행객이 많은 뉴욕에 가면서 뭐가 그리 유난이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매일매일 아르바이트를 해도 모자랄 판에 덜 쓰면 덜 썼지, 연기로 돈을 벌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운 독립영화배우의 삶은 그리 넉넉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부터 대본까지 직접 써가며 4월 초엔 공연을 꼭 올리자고 얘기한 내가 공연 몇 주를 남겨놓고 십일이나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니 책임감마저 상실한 상태가 아닌가 나를 추궁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들 외에도 현재 시점에서 여행을 가는 건 시기상조가 아닌가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첫째는 형의 도움으로 한 시름 놓고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된 것이고, 둘째는 새로운 것을 향한 갈망이었다. 



처음 가보는 장소,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던 곳, 섞여있는 문화, 다양한 사람들, 화려한 빌딩들과 소소한 골목들,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곳에서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흥분하는 나의 모습.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첫 경험을 하며, 이방인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아무런 기준도, 평균도, 편견도 없이 그저 수많은 여행객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몇 년째 큰 변화 없이 비슷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때 다가오는 회의감과 무료함이라던가, 본인이 하는 일에 있어서 나름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거나 끝마쳤을 때라던가, 새로운 도전이나 환기를 바랄 때, 여행이야말로 이런 것들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일인 것이다.


본인의 자리에서 혼자서만 해왔던 쓸데없는 걱정들, 타인들의 시선과 평가, 앞날에 대한 우려, 내가 해내야 한다고 느꼈던 책임감 같은 것들이 하나도 중요해지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여행 중에는 오늘인지 내일 인지도 딱히 중요하지가 않다. 온전히 새로운 장면을 보고 느끼며 나에 대해 질문하고 잘 사는 인생이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혹은 그저 느끼고 즐긴다.


하지만 여행 중에 드는 고민들은 내가 일상을 겪으며 하는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서울 잠실의 한 옥탑방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물론 이런 고민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금세 잊히게 되어있다. 수많은 장애물들이 나를 가로막고 나는 다시 또 다음 달 월세와 생활비 따위를 걱정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실로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여행이 주는 것은 제한된 시간과 조건 안에서의 최대한의 생활이다.


주어진 며칠의 시간 안에 최대한으로 즐기고 떠나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들처럼. 이만큼만 살면 되는 것처럼.


물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구경하면서 여유를 부리는 시간도 있지만 그것 또한 최선을 다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최선을 다하는 휴식, 최선을 다하는 여유.



뉴욕에 있으면서 나는 무엇을 느낄까. 딱히 깨달음 같은 걸 얻자는 건 아니지만, 약간의 자극, 하나의 행동, 작은 변화, 이런 것들이 아주 서서히 내 인생에 스며들어 먼 훗날의 나를 만들어놓을 생각에 설레는 것뿐이다.



징글징글한 내 인생이 뉴욕에 간다는 게 신기해 구구절절 적어내니 도착이다. 드디어 뉴욕.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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