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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Dec 13. 2022

리커버리

  살다 보니 상처를 입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아픔이 없고 슬프지 않은 삶은 없다는 걸. 실망하고 절망하는 일이 두려워 사람을 멀리 하고 도전을 뒤로하고 결말을 맺지 못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스스로 알았던 것이다. 해내지 못할 거라는 걸, 다시 절망에 빠져 허우적 댈 미래를. 

  그렇게 포기했던 시간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다시 그와 같은 일이 다가올 때 한 번 더 두려움을 느낄 뿐이었다. 조금 더 빨리 겪었더라면, 차라리 그때 부딪혀봤다면 하고 별 것 아닌 일에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꽉 쥔다. 

  이러다 죽겠다, 죽을 만큼 힘들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까. 단 한 번도 죽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참 많이도 했다. 아니, 어쩌면 죽을 만큼 해봐야겠다는 다짐으로 그런 말을 한 적도 꽤나 있다. 목숨을 건 사투가 결코 헛되지 않길 바라는 기도문이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언제나 진심으로 임한 사람은 기쁨과 슬픔을 대할 때의 태도가 비슷하다. 그것은 '해냈다' 나 '실패했다'가 아니라 '했다'로 종결된다. 조금 덧붙이자면 '최선을 다했다'가 된다. 

  최선만 다 하면 추억으로 삼기 어려운 기억도 삶의 파편으로 받아들이던 나는 견고하게 초석을 다져오다 최근 자주 무너질 뻔했다. 미래를 포기한 세대들과 다름없이 이렇게 열심히 해서 대체 무엇이 변하겠냐 기대를 버리고,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나에 비해 주변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아 일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속으로 못난 비난도 했다. 이럴 바엔 나도 적당히 살고 취미생활이나 하는 게 낫겠다며 행복의 우선순위를 바꿔보려고도 했다. 열정이나 도전보다 편안함과 편리함을 앞세우면 할 일이 많이 줄어드니까. 

  하지만 성격 상 할 일이 있는데 가만 둘 수가 없다. 뭐든 해결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니 숙제라는 파도에 떠밀려 정치(定置) 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부표처럼 바다 위에 동동 떠서 가까이 다가오는 파도와 맞서 싸우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 사슬을 묶을 고리를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말이다. 

  무려 일 년이라는 시간이 넘어 찾아간 체육관에선 승급식이 진행 중이었다. 나보다 레벨이 낮았던 초심자들이 파란색 띠를 받고 있었다. 내가 멈춰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발전했다. 처음 주짓수를 시작했을 때 부러졌던 새끼손가락이 괜스레 따끔거렸다. 갈띠를 받는 선수는 전 날 대회에서 발을 다쳐 깁스를 했다. 관장님은 선수의 보라띠를 풀고 갈색 띠를 손수 묶어주며 '다친 것도 다친 거지만 회복하는 것, 부상에서 얼마나 잘 회복하느냐도 프로가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말했다. 

  '리커버리'. 특정 동작을 행한 후 몸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일, 원래 몸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동작. 가물가물한 스파링을 회상했다. 무리하게 기술을 시도하다 실패하거나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났을 때마다 듣던 말. '리커버리' 

이미 망가진 형태에서 억지로 이어가기보다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 새롭게 시작했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때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다시 언제 그 상태까지 도달하지, 라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해 본 일을 전보다 더 수월히 행하는 능력은, 반복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재능이다. 한 번 보다는 두 번, 두 번 보다는 백 번 하면 몸과 머리가 기억하니까. 

  '리커버리'와 '기브업'이 다른 말이라는 걸 가끔 잊는다. 상처 하나 생기지 않을 세상이라면 그토록 많은 집에 후시딘 같은 연고가 필요할 리가 없을텐데. 그러니까 밴드에 연고에 소독약까지 준비해 둔다면 상처 하나쯤 그렇게 두려워할 일도 없다고 속으로 되뇌며 '리커버리'라고 입으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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