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어떻게 흘러 가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정신없는 날들. 재정비를 위해 근황을 정리한다.
연기
드라마 <신병>과 예능 <신병캠프> 이후로 작은 광고 한두 개를 촬영한 것이 전부다. 최근 들어 오디션을 꾸준히 보고 있지만 아직 좋은 소식은 듣지 못하고 있다. 배우 활동에 공백이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지만 심한 결핍을 가져다주는 건 확실하다. 다른 분야의 일이 모두 잘 되어도 배우로서 활동하지 못하면 우울해지곤 한다. 배우로서 존재하고 싶은 마음,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할 때의 소중한 기억을 더듬으며 다음 오디션을 준비한다.
글
얌전히 앉아 폰을 내려놓고 몇 시간 앉아 있어야 떠오르는 문장들. 하지만 나에겐 이제 그런 시간이 없다. 가만히 누워 쉴 때도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오고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들이 많다. 무책임하게 폰을 꺼놓기엔 책임지고 있는 자리가 많고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자니 온종일 일을 해도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그래도 무엇이든 적어보겠다며 모두가 잠든 시간 꾸벅꾸벅 졸면서 헛소리를 해댄 글 몇 자와 유난히 일찍 일어난 새벽에 적은 감상적인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두 권 분량의 글이 모였다. 하지만 퇴고할 자신이 없어 쌓아 두고 멀리서 바라만 본다. 다음 책은 언제 낼 수 있을까.
카페
9월이 되면 아스론가(카페)를 운영한 지 2주년이다. 동업자 재용이 그만두고 잠시 우울하기도 했지만 내 곁에서 함께 해주고 있는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다짐했다. 볼보이 07(와인바)에 주 5일 이상 출근하기 때문에 카페 출근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둘 다 출근하면 오전부터 새벽까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내와 보낼 시간이 없을뿐더러 기상부터 취침까지 일만 하는 인생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카페는 동료들을 믿고 맡겨놓았다. 출근하지 않고 매장에서 한 발 떨어져 바라보니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단순히 내 가게를 애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참 부족하고도 나름대로는 부끄러울 것 없는 카페지만 분명 아스론가라는 카페와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힘을 내보고 있다.
와인바
이제는 와인바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요리주점 같은 이름을 써야 할 것 같다. 와인 판매량이 적어 하이볼과 음식으로 매출을 내고 있는 상황에 결국 소주와 병맥주 등을 입고했다. 부랴부랴 직원들과 회의하며 소주 안주를 마련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했다. 소주 판매 소식을 들은 지인들의 자주 오겠다는 연락과 작년 이태원 사고 이후 잠잠하던 거리에 조금씩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여기기로 했다.
유튜브
2년 전 책을 내면서 채널을 만들었다가 게으름에 포기한 유튜브를 다시 시작했다. N잡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채로운 인생을 다방면으로 보여주고자 시작했으나 아직 뚜렷한 콘셉트는 없는 상태다. 볼보이 07(와인바) 근처에서 근무하는 동생 민하가 자주 찾아온 덕에 함께 일을 시작했다. 수익은 없는 상태지만 둘 다 큰 욕심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촬영해나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 돈과 관련 없이 가장 재밌게 하고 있는 일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주짓수
체육관을 옮기면서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도제 관계로 승급을 하는 주짓수라는 운동이 주는 묘한 소속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밥을 먹기에도 빠듯한 일상을 보내는 상황에 먼 길을 가서 뜨문뜨문 운동을 하는 것도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가까운 체육관을 찾아 등록했지만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몇 달을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며 겉돌다 최근에 다시 흥미를 붙였다. 준비도 못했지만 대회도 다시 나가보고 체육관 사람들과 대화도 하며 운동을 할 수 있는 삶에 감사하고 있다. 꾸준한 운동이 주는 선물은 체력 증진도 있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스트레스 해소다. 어디에 풀 수 없이 켜켜이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가 운동 후에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고, 포기하려고 했던 일도 다시 꽉 움켜쥐게 한다. 이제 무언가 그만두고 싶을 때엔 책장 앞에 걸려 있는 두 개의 금메달을 바라보곤 한다.
웹진
전문성도 없이 합류하게 된 웹진. 웹진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 극히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기여하고자 기대했던 영역에 닿지 않는 작은 영향력을 소비하고 있지만 나름대로는 새로운 일이고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어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분기 별로 한 호 씩 나오기에 업무량에 대한 부담이 적고 웹진이 발간되면 급여도 지급받고 있기에 이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육아
날이 갈수록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재이는 어디서든 계속 뛰어다니고 올라탄다. 활동적이고 잘 웃는 편이라 더욱 예쁘다. 한 동안 중이염과 콧물로 고생하긴 했지만 뛰어다니다 다치는 일 빼고 딱히 아프지도 않고 어린이집에서도 적응을 잘해줘서 재이에게 고맙다. 저녁엔 일을 해서 오전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데 요즘 내 체력에 문제가 있는지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도 피곤해서 다시 잠들곤 하는 바람에 어린이집에 지각할 때가 있다. 마음 같아선 예쁘게 입히고 오전에 같이 놀아주다가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데 바쁜 삶과 궁핍한 정신에 지쳐 업무를 처리하듯 오전 육아를 마친 뒤 어린이집으로 인계하는 시간이 야속하고 슬프다. 아이를 키우면서 매번 느끼는 건 아이를 키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육아를 하느라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아내를 케어하는 게 가장 어렵다. 원할 때 식당에 나가 식사를 하고 싶고, 아이 걱정 없이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싶고, 남편의 근무시간엔 집에 발이 묶여 있는 아내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려면 일을 줄이고 수익을 늘려야 하는데 당장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해서 요즘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은 시간 일하고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고 있다.
삶
사소한 일에도 기분이 많이 상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반드시 잘 될 것이라고 속으로 외치지만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시간이 언제 끝날까 걱정이 앞선다. 자유와 무책임을 잃어버린 서른 중반의 청춘은 더 이상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과 타협해야만 했고 수익을 내는데 몰두하며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었다. 영혼을 잃어버린 육체가 얼마나 무의미한 덩어리가 되는지 알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애써 책을 펼치고 글을 쓰며 건조한 마음에 습기를 채우며 살아가는 현재다. 모든 걸 내려놓으면 조금 더 편안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이 더 성장했다고 할 수는 없기에 결국 또 일어서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