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방을 만들어주면서 서재의 책장들을 거실로 빼냈다. 읽지 않는 책이라도 내다 팔라는 아내의 말에도 언젠간 읽을 거라며 고집을 부려 간직하고 있는 몇백 권의 책들이 꽂힌 세 개의 기다란 책장이 거실의 벽 한쪽을 채웠다.
책장을 처음 빼냈을 때엔 아이가 잘 걷질 못하던 때였다. 아이가 걷고 어딘가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손이 잘 닿는 책장 같은 것에 먼저 매달려 앞으로 쏟아질 위험이 있다고 해서 거실의 책장이 또 어디론가 쫓겨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금세 자라 집안을 뛰어다니고 소파나 의자 같은 곳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식탁이나 책상 위에 손을 뻗어 잡히는 것은 모두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떨어뜨리고 줍는 연습을 하듯 반복했다. 그중에 가장 만만한 것이 아이 가슴 높이에 있는 칸의 책들이다. 높은 칸에만 책을 두자니 책장 하단이 가벼우면 더 위험할 것 같아 무거운 대본이나 책들을 맨 아래 쌓아두고 그 위에는 잘 안 보는 시집이나 전문 서적들을 쌓아두었다.
시집은 아이가 들기에 아주 적당한 무게와 두께였다. 작고 가벼운 시집을 한 권씩 들어 집어던지며 노는데 재미를 붙인 아이는 시집을 들고 뛰어다니거나 펼쳐보기도 했다. 옛날 같으면 책이 손상되는 게 싫어 손도 못 대게 했을 텐데 왠지 아이가 책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는 우리 부부 때문에 벌써 영상통화나 코코멜론 같은 애니메이션에 맛이 들린 아이가 책에 관심을 돌린다는 사실이 괜스레 위안이 됐다.
덕분에 떨어진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주워다 책장에 쌓으며 얼결에 시집을 펼치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 팔자에 없던 장사를 시작하며 '장사를 잘하는 법' 같은 영상만 찾아보느라 책 읽는 시간이 거의 사라지기도 했고, 길게 시간이 나지 않으면 책에 집중을 못하는 터라 한 번에 읽어야 속이 풀리는 소설은 집어든 지도 오래다.
이십 분이라도 시간이 나면 책을 펼쳐보기도 했지만 마음이 초조한 상태에서의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 쌓이기는커녕 구걸하듯 좋은 구절을 찾아다니는 노숙생활과도 같았다. 날 위로해 달라고 재촉하듯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잘 써놓은 글도 미워지기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일정과 일정 사이에 책을 읽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졌고, 결국 잠을 줄이고 하루 삼십 분이라도 온전한 독서를 하기로 했다. 이 또한 아이가 얌전히 혼자 놀아줄 때나 늦잠을 잘 때 가능한 일이지만 세 시간 반의 수면을 세 시간으로 줄이면 아침에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약속은 책을 통해 뭔가를 얻어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명상처럼 마음을 비우고 무의식의 독서를 하기로 한 점이다.
어떤 때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졸기도 했고, 어떤 때는 책에 빠져 아이 아침밥시간을 지나치기도 하며 틈틈이 책을 읽었다. 매일 돈과 성공에 관한 생각으로 하루를 꽉꽉 채우다 보니 이른 아침의 독서는 속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고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아도 되며 누구에게도 연락할 의무가 없는 시간.
그렇게 나의 잠을 반납하며 한 줌의 독서를 할 때마다 남은 생의 하루 정도를 같이 반납하듯 피로했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만은 든든했다. 모든 일을 수입과 연관 지어가며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가장의 삶에 한줄기의 무용한 자유가 주는 행복이 그리도 따뜻할 수 없다. 어제 일을 마치고 늦게 잠이 든 탓에 오늘은 두 시간만 자고 일어나 책을 읽었다. 오늘도 여전히 마음이 풍족하나 하루 일과가 걱정되긴 한다. 부디 무용한 자유의 따뜻함이 신의 가호처럼 나를 보호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