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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Feb 28. 2021

배터리

  99퍼센트의 강인함을 뚫고 나오는 1퍼센트의 유약함이 내 삶을 지배할 때가 있다. 자신감 있는 태도로 확신을 갖고 살아가다가 문득 불안 가득한 눈물이 차오를 때가 있다. 그런 종류의 슬픔은 너무나도 아득해서 어디서 시작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디가 땅인지 모르고 바다 한 가운데서 허우적대며 숨을 마시려는 사람처럼 절망적이다. 계속해서 팔과 다리를 저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집에 오는 퇴근 길에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소절이 단숨에 나를 마비시키고, 잠시 쉬려고 앉은 공원에서 걱정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에 울컥하기도 한다.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질문들이 내 가슴에 꽂힐 때 나는 그런 것도 생각해보지 않고 무슨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지 시름에 빠진다. 

  나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놓고 몇 번이고 타인의 삶에 흡수 된다. 존재하는 것들보다 소유하는 것들로 쉽게 완성 되는 한 사람의 인생과, 그런 사람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으며 열심히 등에 짐을 짊어지고 개미처럼 걸어가는 사람들의 줄을 바라본다. 하지만 안다. 그렇게 평범한 줄에 서는 것 조차도 버겁다. 그 줄에서도 낙오 된다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먹이라도 챙겨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들은 가난에 불행하고, 남들이 좋다는 것을 챙기느라 고생한 자들은 그것이 쓸모 없음을 느끼며 불행하다. 

  나이가 들수록 예능을 보기가 어렵다. 예능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 불행한 눈빛을 하고는 억지로 웃고 있다. 남들이 웃는 타이밍에 맞춰 박수를 쳐대며 웃고, 그 상황이 끝나면 다시 멍해지는 그 사람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넋 놓고 있는 그 사람의 어깨를 만지며 조금만 힘내라는 MC의 손길도 아프다. 타인에게 웃음을 안겨주기 위해서 행복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웃음은 쓰다. 

  그래도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본인의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대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의 움직임이 애절하고도 멋스럽다. 완숙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본인이 가진 것을 모두 연소시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감동과 박수를 받으려는 몸부림이 애처롭고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야만 본인의 삶을 증명할 수 있다. 청춘이라는 이름의 정체성은 직업으로서의 증명에서 비로소 형성 된다. 직업을 통해  하나의 사회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느낀다. 그것이 미래에 허무로 다가올 지라도 하는 수 없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가 되려는 움직임이 후회를 줄인다.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보다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대단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며, 아직 아무것도 아니어도 언젠가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응원을 주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최고가 아니라도 최선을 다 하자고, 성취보다 노력을 기억하며 살아가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는 청춘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다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 배터리를 보고 벌떡 일어나 황급히 충전을 시키다 눈물을 쏟았다. 내 청춘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으면서 언제 올 지 모르는 섭외 연락을 못 받을까봐 매일같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선택 받아야 살아남는 사람들의 삶은 대개 이렇다. 좋은 기회 앞에서 스스로 희망고문한다.

  가끔은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양 손 가득 무언가를 챙겼지만 내가 이걸 왜 챙겼는지 잊을 때가 있다. 분명 얻을 때는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도 가득하다. 무언가 빼먹은 것 같아 뒤를 돌아 본다. 돌아가려니 온 길이 멀고 다시 앞으로 가자니 불안하다. 나는 그럴때마다 가만히 멈춰 선다. 

  며칠 내내 집에서 우두커니 있었다. 방전된 내 휴대폰의 배터리와 노트북을 충전 시키며 나도 충전 시켰다. 두 시간 넘게 운동을 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집에 와서 맛있는 요리를 해 먹고 좋은 음악을 들었다. 기운을 내 다시 길을 가려니 목적지는 알겠는데 가는 방향이 어렴풋하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길을 잃겠구나 싶어 양 손에 든 짐 내려놓고 가볍게 다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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