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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Oct 23. 2020

완벽한 휴일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완벽한 휴일을 하루 갖는다. 알람도 맞추지 않고 부재중 통화를 여러 건 남기는 하루. 온전히 혼자가 되어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면 다시 한번 눈을 감아본다. 의식적으로 빨리 깬 건지, 충분한 수면을 취해서 깬 건지, 시간을 보지 않고 다시 잠에 드는지로 가늠한다. 

 잠에서 깨면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잠시 멍하게 있는다. 자세는 다소 불량하지만 일종의 명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흐르는 음악에 맞춰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무념무상으로 한참을 앉아 있는다.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500ml 컵에 물을 두 번 따라 마신다. 처음에는 한 번에 1L나 되는 물을 마시는 게 어려웠지만 이젠 그것보다 더 마실 수도 있다. 일어났을 때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게 매일 아침의 첫 번째 쾌감이다. 

 비트가 조금 빠른 음악으로 바꾸고 청소기를 돌린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개털이 더 수북해지지 않게 구석구석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어두컴컴한 내 집의 암막을 모두 들어 올리고 창문을 활짝 열면 방 안 디퓨저의 향과 옥상 너머까지 올라온 커다란 나무의 향이 맞부딪힌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이불도 옥상에 널어 일광욕을 시켜준다. 

 빨래를 널어두고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책을 들고 옥상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너무 무겁지 않지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책을 골라 빨랫줄에 널어둔 얇은 티셔츠나 수건이 마를 때까지 읽는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쏟아지는 햇빛을 적당히 받는 게 기분이 좋다. 머리가 바삭해지는 기분이 들 때쯤 그늘 쪽으로 머리를 눕히면 바람에 상쾌해진다. 

 

 휴일이라고 해서 딱히 하는 일은 없다. 밀린 청소를 하고 늘어져서 책이나 영화를 보는 일, 적당히 운동하고 반려견과 오래도록 산책하는 일 등이 휴일의 주 업무다. 그중에 꼭 하는 게 있다면 요리다. 한 끼의 식사를 꼭 직접 만들어 먹는다. 평소엔 바쁘거나 귀찮아서 대충 사 먹었던 음식 중에 내가 직접 해보고 싶었던 음식의 재료를 사서 레시피를 찾아보며 만드는 재미가 있다. 맛의 결과는 복불복이지만 사 먹는 음식보다 내가 해 먹는 음식이 더 아깝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맛있게 먹게 된다. 

 적당히 배를 채웠으면 랩탑을 연다. 글은 주로 브런치라는 곳에서 쓰고 있는데, 개인 SNS보다 지인이 없어 눈치를 덜 볼 수 있고, 읽어주거나 반응하는 사람이 없어 편하게 쓰기 좋다. 글만 모아놨기 때문에 나중에 찾아보기에도 편하다. 아무튼 나의 일기장 같은 곳에서 생각나는 것을 끄적끄적 적어 내려간다. 그게 소설이 될지, 희곡이 될지, 에세이의 한 장이 될지는 나도 모른다. 생각나는 것을 적고, 적다가 생각이 안 나면 저장한다. 가끔 두세 줄만 적어놓고 한참이 지난 글을 발견할 때 내가 왜 저런 말을 쓰다 말았는지 골똘히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기억을 되짚으며 과거의 나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것에서도 많은 글이 떠오른다. 


 독서와 글쓰기로 낮시간이 훌쩍 지난다. 운동에 가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구비해놔야 하므로 운동이 끝나고 뭘 해먹을 건지, 집에 필요한 건 뭐가 있었는지 메모한 뒤 시장에서 사 온다. 재활용 쓰레기봉투나 키친 타월, 청소용 부직포 따위다. 새로운 물건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점심은 다소 간단하게 먹었다면 저녁은 술안주와 비슷한 것을 준비한다. 주종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렇게 혼자 휴일을 보낼 때엔 보통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파스타나 스테이크 같은 양식을 먹기로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와인은 혼자 한 병 다 마실 수 있지만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다 하면 혼자 다 먹을 수 없다. 음식을 남기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심하게 고민을 하다 결국 둘 중 하나를 고른 뒤 아쉬운 마음으로 샐러드를 하나 추가하는 식이다. 거기에 친구들과 벌컥벌컥 마시던 편의점 와인보다 조금 더 좋은 퀄리티의 와인을 하나 고른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는 와인으로. 


 운동이 끝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운동에 간다. 주짓수라는 운동을 하는데, 주짓수는 스파링을 오래 하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린다. 나는 대체로 스파링을 두 타임 뛰고 수업을 한 타임 들어 세 시간 정도 운동하는데, 이 정도 운동하면 식단 조절을 따로 하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아서 좋다. 

 운동이 끝나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 운동이 끝나고 바로 일어나서 집에 가지 못 할 만큼 지쳐서 충분히 물을 마시며 앉아서 쉰다. 나보다 운동을 오래 해놓고 체육관 한쪽에서 웨이트 운동을 하거나 줄넘기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저들처럼 할 수 없으니 얼른 떠나는 편이 낫다고 느껴질 때쯤 집에 간다.  


  요리를 하면서 듣는 재즈는 요리하는 시간을 즐겁게 한다. 운전을 할 때는 마음에 드는 곡을 매번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땐 나름 리스트를 만들어서 듣는 편이다. 평소에는 에디 히긴즈 트리오나 쳇 베이커 같이 자주 듣는 음악을 듣다가 레드 갈란드나 벤 웹스터 같이 내가 잘 몰랐던 뮤지션의 음반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다. 몇 번의 연주가 지나고 요리가 완성되면 영화를 튼다. 너무 심오한 영화는 음식을 먹으면서 보기엔 알맞지 않다. 그렇다고 팝콘 무비를 보자니 나의 휴일이 너무 가볍게 마무리되는 기분이다. 이럴 때는 이미 봐서 내용을 알고 있는 영화 중에 또 보고 싶은 영화나, 여행이나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영화를 선호한다. 영화가 끝나면 약간의 희망과 함께 잠들 수 있는 영화. 


 와인 한 병에 기분 좋게 취했으니 설거지는 내일 하기로 한다. 나른하고 반쯤 잠에 취한 상태를 유지하며 침실로 가야 한다. 마지막 와인이 얕게 깔려 있는 와인잔과 스피커를 들고 침대에 누워서 고개를 까닥거리며 음악을 듣는다. 혼자 고급 호텔 스위트룸이라도 온 마냥 청승을 떠는 것 같아 웃기기도 하고, 소박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낭만을 누리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피식피식 웃다 보면 잠에 든다. 완벽한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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