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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Oct 22. 2020

마무리

단편 영화 촬영 하나를 마쳤다. 아직 편집 단계이니 모두 끝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영역 안에서는 끝이 났다. 이번 작업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기에 연기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다른 팀원에 비해 내가 한 일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소수의 팀원과 바쁜 현장 속에서 수많은 오류를 극복해나가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없다, 라고 할 수 없지만 분명 보기 드문 작품을 만들었다. 요즘 사람들이라면 굳이 만들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를 실험적인 영화. 누군가는 '이게 뭐야?' 라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이거 뭐지?!'라고 다시 한번 돌려볼지도 모를. 우리가 만들면서도 계속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던 작업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작품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살면서 이런 걸 언제 또 해보나 싶은 작품이었다.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아름답다고 여겨질 때가 있지만, 이따금씩 결과가 좋지 않아도 잃고 싶지 않은 과정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있다. 경제적 이익이나 인지도 상승을 노릴 순 없더라도 내가 연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 남들이 비웃어도 나에게서 뿌듯함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점점 사랑하게 된다. 유능한 영화인들이 모두 쓰레기라고 말할지라도 '나는 좋았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계속 키운다. 영화의 불완전성 속에서 나만의 취향을 견고히 다진다. 그래야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보다 적확히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도저히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24시간 내내 대본을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촬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인물 하나가 나에게 주어지면 다른 일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손을 놓지도 못하는 상태. 시작되기 전에는 준비가 덜 된 것 같고, 끝나고 나서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아 결국 다음을 노린다. 그래서 끝을 내지 못한다. 미완성이란 단어 앞에서 머무른다. 


마무리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나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만족의 척도일까, 함께 일 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일일까. 과정 속에 태어난 많은 오해와 잘못을 덮을 만큼의 성공적인 결말일까. 무엇이 가장 성공적인 마무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업이 끝나고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는 것이 최근 내가 여기는 가장 좋은 마무리다.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 사람이 웃는 얼굴로 임종을 맞이하듯이, 작품을 마칠 때 찾아오는 매번의 임종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배우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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