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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ug 31. 2020

여행

이제 사람들은 모두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떠난다. 나는 아무도 없는 바다를 찾아왔지만 사람들이 많아 피해 다니기 바쁘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조용한 곳에 안착한 우리는, 이제 비로소 여행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내가 하는 여행처럼 지루하고 게으른 여행이 따로 없다.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다 장작에 불을 지피고 멍하니 있는다. 장작이 모두 타들어   즈음이면 배가 고프다. 아이스박스에 남아있는 재료를 꺼내 무언가를 해 먹는다. 대충 구색을 맞춰 이것저것 넣은 요리의 제목을 정하기는 어렵다. 가장  파도가  , 캔맥주의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마신다. 배가 차면 다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멍하니 있는다.

여행에서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바다의 파도보다는 느리고 호수의 물결보다는 빠르다. 스마트폰 대신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하늘이 시계가 되고, 우리가 무얼 하냐에 따라 시간은 느리게도 흐르고 빠르게도 흐른다.

미션을 깨듯이 맛집을 찾아다니고 관광지를 탐방하는 여행은 나와 맞지 않다.  곳에 오래도록 머무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여행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어제 하지 못한 일의 미련과 내일 해야 하는 일의 걱정에서 탈출해 오직 내가 있는 곳의 존재성에 머무르는 것이 나의 여행이다.

여행이 즐거울수록 다음 여행을 강하게 꿈꾸게 된다. 여행지에서 떠나야만 하는 마음이 지닌 아쉬움을 가슴 깊이 기억한다. 또다시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다 잠시 휴식이 필요할 ,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나를 받아주는 바다 앞에서 멍하니 앉아 눈물 없이 오열하고 소리 없이 파안대소한다. 그렇게 모래사장 위로 차오르던 파도가 나의 근심과 염려를 모두 쓸어가고 나면, 나는 필연코, 다시 시작할  있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기어코 다시 바다를 찾아온다.   번도 같은 모양이었던 적이 없는 파도의 개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수많은 사람들의 무거운 발자국을 받아내고도 단단하게 자리를 지킨 모래의 우직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바다의 습기가 그간 받아준 나의 한숨에 대해 생각해본다. 깊이 생각해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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