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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ug 27. 2020

홈파티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나라는 사람을 손님들에게 공개하는 일이다. 손님들은 옥탑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기 위해 한층 한층을 오르며 언제 나의 집 현관이 드러나는지 기대한다. 4층에 도착해 철문을 열면 나의 반려견 공칠이가 짖는다. 대형견답게 거칠게 꼬리를 흔들며 펜스 맞은편에서 빨리 들어오라고 반긴다.

펜스를 넘어서면 그때부터 손님들은 방대한 양의 털을 막을 수 없다. 40 킬로그램에 다다르는 대형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털에 속수무책이 된다. 공칠이의 털을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만이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있다.


내 방을 공개한다는 건 방의 구조와 인테리어, 무엇이 주를 이루고 있는지 등으로 나의 취향과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이다. 작은 방을 가득 채운 책들과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건반과 기타, 덕지덕지 붙여놓은 영화의 스크린샷, 레트로 한 오디오 플레이어 등이 나의 역사다.


나는 형광등을 싫어해 항상 백열등을 켠다. 침실은 아예 형광등을 빼고 백열등으로 모두 교체했다. 청소할 때와 요리할 때만 형광등을 사용한다. 워낙에 어둡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암막 커튼 안에서 고요하게 있다가 옥상에 나가 쏟아지는 햇빛을 맞이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을 공개하는 건 나의 장점만을 공개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작은 집, 노후된 옥탑 특유의 스타일, 부분 부분 헤진 장판과 벽지, 가구마다 엉켜있는 개털, 공칠이의 발톱이 수도 없이 지나가 긁힌 문틀과 뜯어진 소파의 가죽 또한 나의 역사다. 옥상 한쪽에 방치된 공칠이의 배설물이 나의 게으름을 증명하고, 현관에 쌓여있는 공병들과 화장실에 비치된 손님용 칫솔들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재료를 구입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고, 그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 싱크대를 가득 채운 그릇들을 씻고 집을 재정비하는 일이다.

손님들이 떠나고 나면 온종일 청소를 하다가 하루가 다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나의 공간에 초대할 수 있는 건 나의 피곤함보다 우리가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온건한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술을 마실 땐 음식을 다 먹거나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집에서 1차, 2차, 3차를 다 보내야 하는 이들은 1차와 2차 사이에 다른 음식이 준비될 때까지 음악을 들으며 온전히 침묵하곤 한다. 나는 그 침묵을 사랑한다. 우리가 모든 순간을 대화로 채우지 않아도 결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술잔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잠깐의 공백 속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집안에 모든 불을 켜고 청소를 했다. 누군가가 놓고 간 담배와 라이터를 서랍에 넣고, 얘기에 열중하느라 떨어진 포크를 줍지 않던 친구가 떨어뜨린 포크를 줍고, 손님들을 반기느라 한창 신이 났던 공칠이가 숨죽이며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어젯밤엔 꽤나 시끌벅적했던 우리 집은 해가 뜨자 버스 지나는 소리만 흐른다. 소리 없이 켜져 있는 옛날 영화가 눈을 깜빡거리고 음악 없이 불을 반짝이는 오디오의 전원을 끈다. 어제 깔깔대고 웃던 친구들의 표정이 내 얼굴에 스민다. 싱크대엔 물기만이 남아있다. 여럿일 때의 번잡과 혼자일 때의 고요가 마음속에서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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