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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Oct 26. 2020

글쓴이의 용기

글로써 내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은 꽤나 용기 있는 일이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도 종이 위에는 적어낼 수가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공개되고 말고는 훗날 정할 수 있기에 글쓴이는 그 순간 고백하고 마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유일하게 받아주는 것이 글씨와 종이다. 술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금세 사라지는 고백과는 다르다. 지독히 묵혀있던 마음속의 응어리가 어떤 굉음도 분노도 없이 고요하게 적혀 나간다. 글을 쓸 때 비로소 내 감정을 제대로 짚을 수 있다.



글 쓰는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떠오를 때만 쓰지 않고 떠올려가며 쓰고 있다. 떠오르지 않아도 무언가 적어내야 하루의 임무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하지 않아도 될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대체로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고 별다른 메시지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도 내 진심의 일부다. 아직 확고하지 않은 생각들도 여러 번 적혀 나왔다면 나의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 표현해놓고도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몇 번이나 객관화한다. 늘 자아를 새롭게 여기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글을 쓴 사람에겐 글로만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다. 행동이 곧 글과 같아야 하는 부담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매일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는 글처럼 잘 다져져 있지 않다. 글쓰기는 하루를 과거로 만들지만 인생은 매일 새로운 하루를 겪어내야 하기에 실수가 더 많다. 그러니 더더욱 글을 쓴다. 글로 내 삶을 기록하고 정리함으로써 새롭게 부딪히는 고난의 하루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익히는 것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했다. 이미 읽은 사람들은 책을 칭찬해주었다. 칭찬과 동시에 책에 적어낸 나의 삶이 마음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책 속의 나처럼 살아가려면 나는 다시 점검해야만 한다.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했는지 계획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려고 했다. 계획은 자주 무너지지만 그렇다고 미래를 버려서는 안 된다. 계획에 가까워지려고 계속해서 손을 뻗다 보면 계획과 다른 삶일지라도 내가 가려던 방향과 비슷한 길에 서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런 방식으로 길을 걸어간 것이다.



스스로 이끄는 삶이라는 건 세상에 굴복당하지 않는 일이다. 세상과 타인의 거대한 힘에 의해 내 존재를 하찮게 여기면 삶 자체가 작아지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어쩌면 세상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것이 눈치를 살피거나 이끌리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자주적인 말과 행동으로 이끌어 보는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일이다. 주인공이 한 번도 시련을 겪지 않는 이야기는 없다. 누구보다 많은 시련을 견뎌내야 하는 게 주인공이다. 몇십 년도 되지 않는다. 내가 주인공이라고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그러니 나는 오늘도 글쓰기로 글 속에서 시련을 겪는다. 나는 이렇게 또 지키지 못할 엄포를 글자로 내지르고 이제 움직일 준비를 한다.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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