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스칸썬 Feb 28. 2023

갖고 말겠어, 건식 화장실!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조한 원룸에서 네 번의 겨울을 보냈다.

화장실 높이가 방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도 황소바람이 들어오니 겨울철 샤워는 죽을 노릇이었다.


보일러가 바닥을 지나가는 뜨끈뜨끈한 화장실에서 세월아 내 월아 샤워하며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라고 할 날을 간절히 바랐다.




미국에서 가정 내 화장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호텔에서 본 서랍형 세면대와 화장실 바닥의 카펫이 내 집안에 있을 수 있다니.


이젠 아파트 자체 훈기로 화장실 부스 내에 온기가 베어 느긋한 샤워가 가능하다.

여름철 습기도 환풍기 크기는 작아지고 효과는 커져 조금만 부지런 떨면 적정습도가 유지된다.


화장실 리모델링에 중점 둔 부분은 건식 형태.

인테리어 업체 여러 곳과 상담해도 반응은 공통이었다.

"가능은 하나 굳이 하시려고요?"

화장실을 새로 짓는 게 아닌 이상 이미 있는 습식 형태에선 환기나 배수 모두가 무리라는 것.

한마디로 인테리어 전문가 입장은 비추.


내 꿈, 어쩌지?




평이하게 화장실 리모델링을 의뢰했다.

다 뜯어내고 욕조도 들어내고 가급적 최소한의 것들만 부착하는 선에서.

건식은 개뿔(이라 하지 말고 작전상 보류라 하자).


거실 화장실은 그렇다 치고 안방 화장실은 초미니 사이즈인데.

그 점이 좋았다.

우리 집 막내조차 좁다고 공간을 탐내지 않으니까.

이름도 '엄마 화장실'로 붙였다.

아싸!


시중에서 구하기 쉬운 모델 중에서 작은 세면대와 작은 양변기를 찾았다.

거울과 선반도 작은 것으로.

수건걸이도 안 달았으나 너무 불편해 뒤늦게 부착.

바닥은 일체 물 한 방울 안 흘리는 나만의 건식 화장실.

(그럼에도 규칙적인 배수구 청소와 과도한 환기가 필요하다. 세면대의 물 빠짐과 물튀김. 줄눈과 변기 청소는 건식 할아버지 형태여도 꼼꼼히 해야만 한다.)




냉기 가득하던 원룸 화장실에서도 축축해지고 바닥 곰팡이 올라오는 슬리퍼를 사용하지 않았다.

세수만 해도 주변에 물튀김은 생기게 마련이라 꿈에 그린 러그 대신 매트만 깔아 두었다.


무늬만 건식화장실인데 그 건식화장실 문화를 흉내 내는 것도 좋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안방 미니화장실은 적어도 나에겐 건식 화장실,

걸핏하면 들어가서 변기뚜껑 내리고 한참 꿈지럭댄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 비스킷 편을 다시 보거나 창문에 비치는 바깥 네온사인의 빨강 파랑에 멍 때리는 것도 편안하다.


꿈은! 이루어졌다.



♡ 커버 출처: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책꽂이 적정체중을 유지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