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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Mar 05. 2023

책꽂이 적정체중을 유지하라.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이 굳이 현관 벨을 누른다.

현관 문턱도 넘기 힘든 바위 같은 박스 하나를 끙 밀고 들어온다.

아이들 상급학년용 문제집 들춰보는 취미랄까. 나를 위한 바위.

이번엔 수능용이다.


출처 픽사베이


새 학기 앞두고 엄마의 책꽂이 정리도 엊그제 끝냈다.

백 쪽짜리 한 권 넣을 틈도 없다.

일타강사 교재있으니 별 수 없다.

아쉽지만 책장 안에서 이별할 종류를 골라내자.

아래쪽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도 맨 위칸은 공간이 남아 세 권이 쪼르르 쓰러져있다.

그래도 거긴 안된다. 비워둔다. 


책꽂이라기에 궁색하다.

이사 간다는 집에서 각각 물려받 짝 안 맞는 세 짝 이어 붙였다.

그런데도 가구 없는 거실의 얼굴마담은 단연 책장이다.

이 집 저 집 거실의 서재화 문화가 유행을 이미 돌고 돌았지만 거실이 생활권에서 떨어진 우리 집은 그것도 좀 애매하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야 아이들 책상을 샀다.

그전엔 탁자 하나와 트레이 서너 개를 안방과 거실에서 해쳐 모여 식으로 책상 삼았다.

들여놓은 아이들 책상의 책꽂이가 위아래 3.

그간 한데 모였던 것들을 각자의 책꽂이로 배분하니 처음에는 책장이 홀쭉해졌다.


장에는 책만 꽂히는 게 아니다.

학기별로 모아놓은 아이들 자료집, 사진첩,

기관에서 받은 서류에 복습용 책자들. 처리할 파일들, 일기장에서부터 수첩들까지.

이 모양을 한 모든 것들은 이곳으로 모였다.


살 빼기는 어려워도 살찌는 게 눈깜짝이긴.

사람이나 우리 집 책장이나 매한가지다.

호리호리하고 헐렁하던 책장이 꾸역꾸역 채우다 보니 드럼통 몸매가 되었다.

24개월 할부로 전집 들여놓고 배부른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


늘릴 대로 늘어나는 고무줄 몸빼바지 입은 책꽂이.

바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정든 것 정리하기가 새것 채우기보다 어렵다.

추억 어린 책, 다시 볼 것 같은 책, 덜 본 책.

이런 이유로 책장은 적정체중으로. 한정된 공간으로 못 박아야 한다.

책장을 하나 더 들여놓으면 된다, 안된다?

우리 집은, 아니 된다.


아이들 학령기 동안은 분기별 이별과 신규회원 맞이로 들고나감이 업데이트되도록 관리하자.

고인 물은 썩는다.




초등생 집이니 중등 이후의 수능교재는 처음 만져봤다.

무게가 압도적.

문제집과 버금가거나 오히려 더 두터운 해설집. 세트를 손으로는 들 수 없을 지경이다.

체력전.

중학 이하라면 아이와 엄마가 서점에서 수능 코너에 한 번 가보자.

꽂힌 책들 눈으로 보는 거 말고.

제집과 해설집, 교과서 등등을 꺼내 들추면서 깨알 같은 글씨의 공부량에 한번, 교수용 아닌 수험생용으로 믿기지 않는 고등 수준에 두 번.

끝으로 무게에 세 번 놀라보자.


그러고 나면 "당장 들어가 공부하자" 소리 대신

"우선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 "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이게 부모다.




아이의 시계는 지금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


대신 책장에서 탈락했으나 차마 이별 못 한 책은.

상하더라도 식탁 위든 안방 바닥이든 펼쳐놓는다.

무어든 집어서 화장실 가는 삼분, 밥 다 된 줄 알고 앉았다 대기하는 삼분, 약속시간 맞춰나가려 주저하는 삼분.

삼삼삼분이 모이면 한 권이다.


시간 있을 때 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책을 꽂아두지 않는다.

볼 책이라면 책상 위나 침대옆, 화장실 입구나 외출 시 챙기게 현관 입구에 놔둔다.

발에 차여야, 손에 닿아야 든 말든 맘을 정한다.

주인 눈도 안 닿는 정물화는 걸어두지 않는다.


책장과 책을 사랑하는 만큼 비워야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책들은  환기시켜 숨을 트인다는 주인의식으로.

우리 집 책꽂이 체중은 매일 체중계로 재듯 적정 볼륨을 유지한다.


그리고.

달랑 세 권 있는 빈 공간은 언제나 새로운 책을 열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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