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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Dec 16. 2023

기억하나요? 오겡끼데스카

이와이 슌지 감독 [러브 레터]

겨울이면 해는 너무 빨리 지고 밤은 유난히 길다.

12월의 해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다면.

12월의 달이 부르는 음악이 있다.

영화 [러브레터] o.s.t  [A Winter Story]는 December와 함께 위안이 되는 선율이다.


영화 러브 레터는 기회 닿으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었다.

세밑에 아끼고 아끼다 살짝 열어본 선물처럼 살포시 꺼내본 작품.

그리고 까맣게 잊었던 영화음악.

우스꽝스럽게 패러디되었던 오겡끼데스카. 러브레터 속의 먹먹함에는 재를 뿌린 대신 친숙한 일본어로 자리 잡는데 일조했다. 오겡끼데스카? 와타시와 겡끼데쓰. (잘 지내나요? 난 잘 지내요.)


추운 겨울 따뜻한 도시 대신 더 추운 일본으로 떠나는 관광객들의 발길에 오래된 영화임에도 러브레터는 여전히 계기와 영감이 되곤 한다.



연인을 잃었다는 상실의 늪에 빠진 지 오래인 기쁨도 슬픔도 없어 보이는  빈 표정의 히로코.

겨울은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고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입김이 하염없는 다음 겨울에도.

가슴 저림은 나아지지 않은 채.


그렇게 현실 부적응자로 연인을 그리워하며 천국으로 간 옛 연인의 주소지로 편지를 보내본다.

실없는 행동임을 스스로 알아서 더 외로운 히로코.

그런데 기적이 벌어진다. 

인연이 된 두 여인의 성탄절 카드 같은  따뜻한 펜팔기.


러브레터는 사랑과 추억, 거기에 우정이 더해진다.

스토리나 캐릭터가 앙상해도,

요즘의 스케일에 비한다면 빼어난 설경의 롱테이크 장면만으로 겨울마다 이 영화를 찾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사랑이 항상 곁에 있다면 우린 늘 지금의 그 사람만을 붙잡고 이게 전부라고 시시해할 것이다.

우리끼리의 한계, 이 사람의 뻔한 패턴, 어느덧 지루한 연애, 어제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대화에 바람 빠진 풍선을 붙든 느낌.


히로코는 그런 시시한 일상을 연인과 함께하지 못하여 그의 과거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설국열차를 타듯 눈을 헤쳐 역시 가득한 눈 속에서 돌아다보는 여인의 뒤통수를 통해.

연인과 동명이인인 천국에서 보내준 편지의 장본인임을 직감한다.


너무 홀연히 갑자기 떠나간 연인이기에 발자취를 찾다 찾다 내가 본 현재가 아닌 오래전 소년의 그를 만나게 되는 경험.

눈발을 맞으며 눈보라를 뚫으며 영원히 눈 속으로 사라진 이츠키를 찾는 과정.

슬프지만 구석구석 유머 코드를 담아서,

마음 아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준 그에게 고마워하며 이 영화는 느리지만 또각또각 눈길을 건너간다.



한 반에 동명이인 남녀가 있다면 서로 민망하고 어색하다.

특히나 남의 시선에 한창 의식적인 중학생의 그녀와 그.

새초롬한 여학생과 공부는 담쌓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소년.

이들이 둘 다 후지이 이츠키였다.


"읽을 리가 없잖아."

도서관에서 잔뜩 책을 대여해선 책표지를 넘기면 봉투 안에 담긴 도서목록.

그리고 그 목록마다 맨 위에 적힌 이름 이츠키.

펄럭이는 커튼 옆에서 길쭉하고 잘생긴 소년이 책 읽는 이 씬은 여전히 멋지다.

더 크게 펄럭이는 커튼의 장면전환은 몇십 년이나 되었건만.

생생하고 인상 깊은 씬이다.



영화를 보노라면

짝꿍과 오가던 스프링 쪽지들과 그 시절이 영원할 것 같아 괴롭기도 기쁘기도 하던 시절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다.


반에서 남녀가 동명이인이다 보니 두 아이가 별생각 없이 같이 있는 구도만 보여도 킥킥대고 세트라고 놀리는 아이들.

좋아한다는 말 대신 짓궂은 장난을 걸고 무심하게 구는 행동으로 표현을 대신하는 시크한 소년.

뭣하나 주목되어도 귓불이 빨개지고 한없이 속상한 사춘기 소녀.

스토리는 더없이 잔잔하고 극적인 구석이나 반전 없는 전개이지만.

혹은 1인 2역의 여주인공이 둘 다 커트머리라 영화 초반은 쟤가 쟨가? 싶어 되려 어리둥절하지만.

속속 숨어있는 웃음소리속닥임이 참으로 한겨울 군밤 맛같이 사랑스럽다.

감성영화는 그거면 된다.

다독다독 슬프지만 위안받는 느낌.


우리 집 피아노는 이상하게 겨울에만 뚜껑이 열린다.

너튜브로 뚱땅뚱땅 따라만 해도 뚝딱 한곡을 뮤지션 흉내 내게 돕는 세상.

윈터 스토리를 좀 더 듣고.

피아노 건반으로 가보고 싶은 올겨울 끝자락 음악.

영화 러브스토리 o.s.t. 만큼이나 눈과 찰떡궁합이니 오늘같이 눈 오는 날 운치 있게 거실을 채우는 곡으로 원터 스토리는 제격이다.



일본 문화에 성큼 손이 가지 않던 시절.

피곤하고 추워서 졸린 영화 같아 보기 싫다 했던가.

영화가 끝나어둑어둑한 길에서 증이 봉투에 담긴 밤을 까먹으며.

가슴에 꽉 들이차는 음악과 여주인공의 가물가물한 눈꺼풀과 종일 흩날리는 눈보라가 내내 눈가에 아른거리던 초겨울.

영화 얘기 대신 다른 신변잡기만 늘어놓다 집에 온 기억.


내년 겨울에는 중학생 이츠키를  중학생 아이와 함께 만나봐야겠다.

도서관 카드 대신 휴대폰에 도서관 바코드만 있어도 되는 세상이지만.

도서카드에 수기로 써서 대여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커버포함 네이버 [러브 레터] 이미지



덧붙임.

혹시 옛 여인을 그리워하는 여주인공의 청초한 인상을 또렷이 기억하는 러브레터  사랑앓이 경험자시라면.

가급적 영상과 음악에서 멈추시길.

검색과 함께 솟구치는 여주인공의 현실이 어쩐지.

아쉽다.  섭섭하다.

게다가 잘 안 풀린듯한 팍팍한 인생 스토리도 안타깝다.

 

영화는 영화로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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