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북맥캐맥

이벤트는 집집마다 다르다.

by 투스칸썬

이벤트는 밤중에 벌어지곤 했단다.


폭죽이 터지거나 빨간 리본이 묶인 선물상자 대신

환자가 있는 집의 전문용어 이벤트란.

제 풀을 이기지 못해 악을 쓰는 환자를 뒤에서 꽉 안아주는 일이었다.

헛것이 보여 부들부들 떠는 환자에게 괜찮다 괜찮다 다독이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진이 빠진 환자를 싣고 119에 함께 오르는 마무리였다.




카야 토스트 네 쪽 중에서 한 입 베어 물다 말고 커피를 두 잔 마시고 나서야 ㅁ은 이벤트 이야기를 끝맺었다.

마지막 이벤트가 끝났다는 소리를 대뜸 자르지 않고 들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마터면 가족끼리 무슨 이벤트냐고, 카야잼 이렇게 달고 힘나는데 좀 먹으라는 시답잖은 농담을 꺼낼 뻔했다.

ㅁ은 퉁퉁 부은 손에 껴진 묵주반지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부모님이 연로하신 나이.

지병이 깊어지는 찬바람 부는 계절이 왔다.




ㅁ은 영영 철이 들지 않을 줄 알았다.

소맷부리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결국 어렵게 얻은 휴가날.

한 시간 온 거리를 다시 달려가 고속터미널을 지나 신세계에서 옷을 바꿔오던 ㅁ.

방학마다 유럽의 구석구석을 돌고 와서 면세점표 선물 자랑이 취미이던 ㅁ.

철마다 커튼을 바꿔달아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겠다던 커튼사랑쟁이는.

몇 년째 시어머니를 아이처럼 키우고 어르고 보호하느라 커튼이 헤지든 커튼봉이 떨어지든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 모른다.





시어머니는 두 번째 만남부터 나에게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시고 쌀쌀하게 대하셨다.

세상 어느 부모 눈에 잘난 내 자식 배우자감으로 양에 차겠는가.

애써 그리 생각하면서도 참으로 서운했다.

그걸 일기장에 말따옴표 붙여가며 써두고 잊지 않고 보는 게 더 지옥이었다.


그사이에도 시간은 가고 어머니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셨다.




어디 한 군데 아프다고 곧이곧대로 말씀 안 하시니 더 안쓰럽다.

한수저도 못 드신다는데 밥맛이 좋다고, 니 몸만 챙기라시니 말문이 막힌다.

고부간이라는 계급장 떼니 시어머니가 사람으로 점점 좋아지는데.

일기장 속 호랑이도 당신이셔서 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오후근무인 ㅁ이 먼저 자리를 비운 후 베이커리에 남아 어머니께 메시지를 남겼다.

매주 제가 식사 뭐 하셨냐고 전화드릴 테니 꼭 메뉴 알려주셔야 해요.

'콜맘'으로 알람 설정을 해두었다.

휴대폰 어디에 뒀는지. 전화벨 열 번이 울리다 멎을 때까지도 못 찾으실 어머니께서.

이 메시지는 며칠 후에나 읽으실까.


내년도가 인쇄된 다이어리에는 슬금슬금 페이지수가 늘어나더니 11월부터 시작된다.

그만큼 종이 일기장을 쓰지 않는 손길을 부르는 것이고 다음 해 1월이 아닌 묵은해 12월부터 내년도를 시작하는 설렘이 참 좋다.



매일 가까운 사람에게 이벤트 해주기.

무엇보다 친절하기.

이게 새해 목표이다.


커버포함 출처 픽사베이


유은실 [마지막 이벤트] 중에서.


할아버진 아빠랑 생각이 다르다. 내가 쓸모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재주가 있다고 믿는다.

"너는 아주 착해. 노인 내 마음도 잘 알지. 그게 니 재주야. 거기다가 넌 축농증이라 냄새를 잘 못 맡잖아? 그러니까 냄새나는 노인 내들한테 찌푸리지 않고 잘할 수 있어. 너는 나중에 요양원 같은 데서 일하면 최고 인기 직원일 거야."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할 때, 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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