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너에겐 그렇게 돼
코카콜라 맛있다.
by
투스칸썬
Jan 17. 2024
아래로
총선 날짜가 두 자릿수 앞으로 다가왔다.
소영이는
학창 시절
정치외교학과 꿈을 같이 꾼 친구다.
그리고 소영이는 정치 쪽으로 전공을 선택했고 어디서도 더는 학번 언급할 일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친척분이 소영이 전공 교수 셔서 소영이는 내게 진로를 더 많이 상의하였다.
웃으면 눈이 안 보이게 파묻히는 닮은 꼴 우리.
학교 뒷골목 인기 없는 한산한 집 짜장떡볶이를 매일같이 먹고 학교 근처
소영네서
수험생인 소영이 남동생이 독서실에서 돌아올 때까지 노닥거렸다.
실은 그 기간에 세상의 모든 시름과 청춘의 부질없음과 지성에 대한 목마름을 논했다.
소영이가 유독 좋았던 점은 어두움이 어두움으로 끝나지 않고 밝은 날은 무조건 올 거야, 틀림없이! 하며 일어서던 낙천적인 보조개 덕이다.
내 주변에서 책을 나보다 더 많이 읽은 아이 소영인 하나같이 살아 숨 쉬는 등장인물을 책 속에서 꺼내어
이야기해 주었다.
발표력도 붙임성도 사교성도 부족한 소영인 내 앞에선 날개를 단 언변과 창의적 상상력으로 날 놀라게 하곤 했다.
난 소영이가 본 책 속 주인공을 질투했고 소영인 내 주변 친구들을 질투했다.
글씨도 못 쓰고 얼굴도 안 예뻐서 글씨 잘 쓰는 미남자 만나는 게
소원이
던 소영이.
젊음이라는 어둑하고 막막한 화면 속에 소영이와 함께라서 그 어둠도 좋았다. 소영이 모든 게 좋았다.
소영인 엄마는 안 봐도 나와의 대화는 거를 수 없다고 과사무실 앞에서 매일 나를 기다렸다.
눈썹 그리는 걸 좋아해서 눈썹을 고쳐 그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날 반기던 소영이.
소영이가 바빠졌다.
코믹물과 사극을 즐겨보는 소영이의 취향은 일찌감치 정치 입문준비 중인 복학생 연인 앞에서 싹 바뀌었다.
신간영화를 매주 체크하고 주말 조조를 예매하던 우리의 금요일 패턴은 사라졌다.
멀끔하지만 허당끼가 매력이라고 내게 소개하는 소영이. 정치 관심 많고 말 잘하는 나와 남자 친구가 공통분모가 많다며 친해지길 바랐지만 우린 두세 번 자리하다 말았다.
가끔 들른 과실에는 소영이가 놓고 간 포스트잇 붙은 선물이 놓여있었다.
선배가 사준 건데 너도 좋아할 거 같아 하나 더 샀어.
벙어리장갑을, 모직스커트를, 오르골을 선물했다.
대신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눈을 흘기고 섭섭한 마음에 선물이 달갑지 않았지만 구내식당이나 도서관에서 본 소영이의 가려진 보조개에 점차 익숙해갔다.
그렇게 소영인 떠났다.
받침 세 개가 다 들어가는 이름의 아이를 낳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우리 집 근처인 친정으로 몸 풀러 온 소영인 부재중 전화에 답하지 않았다.
소영이
어머니는 행시 준비생 딸이 졸업도 전에 식도 안 올리고 득남한 데다 본인의 고시패스가 목표인 사위가 탐탁지
않으셨는지
.
전화를 바꿔주지 않으셨다.
여기 까지라는 생각에 더는 연락하지 않았고 소영이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암경기장이었다.
초대권으로 처음 간 엄청나게 큰 경기장 입구에서 소영이와 받침 세 개가 다 든 이름의, 어느새 학령기로 보이는 아이를 한눈에 알아봤다.
일행과 자리를 확인하자마자 소영네 쪽으로 건너가려 했다.
반가운 마음은 한사코 자기 쪽으로 오지 말고 본인이 오겠다는 소영이
손사래에 무너졌다.
일행이 가만 지켜보더니 나를 쿡 찔렀다.
"안 보여? 아는 척 말고 꺼져달란 눈빛
?
"
보였다.
잘 못 본 거려니 했을 뿐.
경기가 시작되었고 한달음에 달려오기는 고사하고 못 본 척을 원한 소영과 냉담한 표정의 소영의 남편.
난 연락처도 묻지 않고 경기 중에 나왔다.
혹여 경기 후에도 기다리게 될까 봐.
그렇게 피하는 이유를 지금도 알지 못한다.
받침 세 글자 가진 아이가
훌쩍
성장했을 세월만큼 시간이 지났다.
치과에서 전직 국가대표가 허당 짓 하는 예능 프로를 멍하니 보며 대기 중이었다.
연로하신 어르신이 나를 흘끔 보고
채널을 돌렸다.
뉴스에서 남의 나라 선거 전망이 나오길래 오늘 뉴스나 보려 유튜브에 접속했다.
알고리즘으로 안내된 정치 토크쇼.
말 참 맛깔스럽게 한다 싶은 젊은 정치인이 지역구 출마의 변을 반짝반짝 피력한다.
인상도 말투도 눈에 익다.
설마, 하며 검색했다.
최종학력은 학부 이후 추가되어 달랐으나
틀림없다, 소영이.
영화 접속 대사를 간간히 생각한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
피천득 님의 인연 마지막 줄도 생각한다.
세 번째 만남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소영이가 보고 싶다. 보고 싶지 않다.
그냥 내 마음을 모르겠어서
잘 못 본 양 지나치고 싶다가도 설마 너를 잊었겠니, 그때 사정을 이야기하며 내 손을 덥석 잡아주지 않을까. 너도 너무 기다려오지 않았을까.
앞에 나서 발표하는 게 가장 고역이라며 내 앞에서는 진귀명귀 명대사를 쏟아내던 천재 달변가 소영이.
아이가 수학문제 정답을 운에 맡기느라 연신 코카콜라 송을 흥얼댄다.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어.
또 먹으면 배탈 나.
알아맞혀보세요
.
딩동댕동 커피잔 코알라 무지개
나도 그래볼까, 소영아.
우리 아이 방법처럼 보고 싶은지 아닌지.
코카콜라에게 대신 답해달라 맡겨볼까, 소영아.
커버포함 출처 픽사베이
keyword
코카콜라
정치
에세이
39
댓글
4
댓글
4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투스칸썬
직업
에세이스트
문화와 문학을 열망하는 에세이를 씁니다. 신간과 신제품 시음을 지나치지 못하면서 올드 정서가 좋은 마릴라 엄마에요.
구독자
188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돈가스집 사장님은 왜 그러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