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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Dec 30. 2022

연말이면 생각나는 냄새!


엄마는 일주에 몇 번씩이나 펄펄 끓는 양은통에 빨래를 삶으셨다.

속옷을. 수건을. 걸레를 돌아가며 느라 가스비 제대로 나온 거냐고 검침원 쪽에서 확인 나올 지경이었다.

부지런한 엄만 의자에 앉을 새도 없이 가스불 주변을 지키시며 몽글몽글 세제가 일으키는 거품이 보이면 집게로 빨래를 휘저으셨다.


노동임에 분명한 빨래 삶기는 엄마의 특기에 가까웠다.

분가하고도 오랫동안 엄마 특유의 펄펄 끓는 물과 세제의 힘으로 뽀얘진 수건을 탈탈 털어 개어놓는 과정은 특별했다.

살림살이 중에 재미없는 베스트가 빨래 널기와 개기라면.

엄마표 삶은 빨래만큼은 예외였다.

한 장씩 꺼내 피부에 닿으면 양털처럼 포근한 맛은 눈뜨기 힘든 아침에도 한기 느껴 씻기 싫은 겨울에도 기분 좋음 모드로 바꿔놓았다.

  



급기야 물 건너 지방으로 엄마가 내려가신 후에도 우체국택배가 오가며 삶을 빨래와 삶은 빨래를 교환하기에 이르렀다.

마철같이 눅눅하고 습한 시기가 더 절실했으나 수건 한 장 마를 틈 없이 수시로 쓰느라.

정작 엄마표 삶은 빨래의 시즌은 이맘때인 연말이었다.

햇볕에 오래 말린 후 애벌을 하고 삶고 건조한 실내에서 금세 마르면 개켜서 우체국택배 박스 밑에 깨끗한 비닐을 깔고 수건을 하나하나 접어 넣어 누런 박스테이프로 붙여 보내셨다.






이후 세탁 삶는 기능에 건조기까지, 거기다 동네마다 생긴 세탁방은 코인만 넣으면 만사해결.

이불빨래도 이불 털기도 집안에서 꼼짝 안 해도 빨래 문화의 성장은 눈부시다. 벗어나지만 못할 뿐.

무소음에 속옷 삶기 기능으로 특화된 아이사랑 세탁기가 아이 있는 집 인기상품이었다.

이젠 엄마도 가스불 앞을 지키는 게 쉽지 않아 이불빨래를 코인세탁방에 맡기신단다.

폭설로 택배 신청도 안 받는다고 그 큰 박스를 다시 집으로 가져오셨대서 괜찮다고, 이젠 세탁기가 나도 있는데 더는 이런 고생 마시라며 엄마표  빨래는 끝이 났다.


출처 : 픽사베이


쌩쌩 돌아간 드럼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들을 건조기로 옮겨 버튼을 누르고 외출한다.

다른 빨래들은 개키는 과정이 정말 싫은데 수건만큼은 착착 각이 잡히게 3분의 1씩 접어 너 풀 리는 끝머리를 반대쪽 두 겹 사이에 쏙 넣어 마무리하는 느낌이 말도 못 하게 개운하다.


올해 마지막 우체국택배가 도착했다.

김치통을 감싼 돌돌 말린 일회용 행주가 세 통.

못 말리는 엄마 생각에 싱긋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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