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여행 간다고 우리 집에 친척들이 와 기다리는데. 너 화장실 들낙 대느라 다 늦었잖아.”
엄마도 기억하는구나.
대체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해서, 뒤처리를 하고 또 해도 마찬가지라서 화장실 안에서 이도 저도 못하던 나의 초경.
엄마 대신 닦달하러 온 동생 목소리가 화장실 안으로도 크게 들렸다.
“엄마, 언니 계속 설사하는지 안 나와. 옷도 몇 번 갈아입나 몰라. 더러워.”
여행지에서 인디언 핑크 파자마 바지를 입고 잤다. 눈을 뜨자 확인한 7부 바지 파자마에는 동그란 얼룩이 두 군데나 묻어있고 나는 고민 없이 바지를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한테 말해서 빨아달라 할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정말 좋아하는 파자마였다.
요즘이야 여자 어른이 된다는 것을 엄마가 귀띔하고 아이가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연스러운 세상이지만 우리 때만 해도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출처 : 픽사베이
“엄마, 나 들를 데 있어요.”
아파트 상가에서 엄마와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이 먹어 무슨 잠옷을 따로 입냐? 살림하면서 집에서 입는 옷 하나면 되지.”하시고도 엄만 잠옷 파는 코너에서 옷을 고르고 값을 치르신다.
사흘 째 아침, 비행기 출발시간도 안 알려주신 채 엄만 이부자리를 개어놓고 들고 오신 가방 하나 그대로 일찍 나가셨다.
쌀쌀맞은 얼음나라 여왕, 우리 엄마.
현관 입구에서 내 주머니에 "네 거는 맘에 드는 걸로 사 입어."하고 오만 원짜리 두장을 넣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