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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Jan 26. 2023

지금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텐데.

존경하는 팀장님

팀장님이 그리 말씀하셨고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오랫동안 직장에서 나를 보아 오셨고 어른 사회를 알려주신 분이셨다.

정확하시고 용감하시고 꼼꼼하셔서 많이 힘든 상사 타입이셨다.

세상에 모르는 게 없으신 박식함과 준비 마치기 전에 나서지 않는 철두철미함. 부딪치기 전에 포기하지 않는 과감성에 늘 탄복했다.

직장에서 그런 사수를 둔 건 나의 복이었다.




오늘처럼 펑펑 눈 오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

층계참에서 팀장님은 내 팔을 꽉 잡아주셨다.

몸도 안 좋으시고 연세도 있으신데 여성이나 부하직원을 보살피는 느낌보다는 보호본능 같았다.

팀장님께 배워 겁나는 건 세상없는데 딱 하나.

눈 덮인 층계만 보면 주저주저하는 나의 약점.

고작 삼단 층계를 저 멀리서 보고 미리 걱정하는 나를 붙들어주신 아량.




아무리 갓난쟁이가 엄마 눈에 밟혀도 시즌이니 일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출산 한 달 만에 채근하셨다.

매일 가슴이 퉁퉁 불어서 오전 오후 한 번씩 근무 중에 뛰어나가 유축을 했다.

그러면 일이 쌓여있고 다시 불어난 채로 야근.


퇴직 결정에 팀장님은 저렇게만 넌지시 말씀 남기셨다.

주워 담을 말이면 꺼내지도 않을 것이고 홧김으로도 그만둔단 소리 한번 없었으니.

섣부른 퇴사 결정 아니란 걸 아신 것이다.

그저 현실적으로 엄마에만 주저앉을까 봐, 그 문화 속으로 침잠할까 경력단절을 염려하시고 고비를 넘기긴 

힘들겠냐고 조심하셔서 덧붙이셨다.

잦은 자리비움을 모른 척 오래 해주셨다.


지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긴 힘들 텐데.

말씀대로다.


출처 픽사베이


얼마 안 지나 다시 뵈러 갈 줄 알았다.

한 번을 못 갔다.

아주 대단한 커리어를 달고 짠 나타나야 하는 것도 아닌데. 지척인데. 안 뵙게 된다.


공연히 주책 부리며 "지금이 너무 좋아요." 같은 실없는 소리나 까 봐.

"그지? 회사에서 밤낮없이 일만 하고. 그런 거 없으니 좋지?" 이러실까 봐. 안 뵙게 된다.

"그냥 집에 있는 건 아니지? 그럴 사람 아니잖아."

이런 소리를 하시고야 말겠지.




요즘 보는 책에 유난히 언급되는 표현,

생산적인.


네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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