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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Apr 06. 2023

가급적 걷습니다.

지하철 대기선 맨 앞의 남자가 영 거슬린다.

양복바지 무릎선 이하를 자꾸 흔든다.

빗물이 신발 코에 방울방울 맺혀 발등으로 터는 듯한 행세다.

간헐적으로 한 발씩 번갈아가며 한다.


지하철 입으로 들어가서 멍하다가 나도 그만 아까 그 남자의 미운 짓을 하고 만다.

스마트워치에서 야외 걷기 기능 중지 3초 전 경고가 징징 울려서 움직이는 시늉을 지속하는 매무새이다.




대체로 걷는다.

자가용도 별로고 대중교통도 내키지 않는다.

이 동네 고집하는 5할이 비교적 길이 완만하게 닦이고 어디로든 길이 통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쭉 걷기 편하다는 점.

길눈 어두워도 좀 헤매면 된다.


아이들 붙들고 엄마는 여기저기 걸려 다녔다.

아기띠 매고 아가 엉덩이 통통 치면서 사방팔방 쏘다녔다

8 천보가 예사라서 아이들은 다섯 살부터 그렇게 걷다 오면서 아파트 승강기 타자는 정도이지 힘든 색은 없다.

초등 되더니 아이들이 만 이천보까지는 걷는다.

승강기에는 꾀부리는 큰아이만 태우고 작은애와 천천히 층계로 오른다.

배가 남산만 한 산달까지 건물 층계를 매일 걸어서 출근했다.




대체로 걷는다.

몸이 무거워졌는지, 두통이나 복통이 감지되는지, 손가락 발가락 혈액순환이 온전한지.

집중하면 절로 알게 된다.


같이 살던 J선배에게 물려받는 A차는 경차라도 이십 대에겐 사치였지만 스물부터 탄 선배에겐 쭉 다리였다.

자가용은 짐덩이였지 결코 내 다리가 아니 되어 곧잘 친구들 빌려주고.

막히는 구간이면 핸들 대신 걷는 편이 좋았다.


대체로 걸었다.

결혼할 때 시댁에서 차를 사주셔서 쾌재를 불렀다.

우리 힘으로 장만하면 소유물 거느리는 맛을 누리고 싶을 텐데.

한 치 건너 받는 거니 내 거 아니군. 난 빌려 타는 것만 어쩌다 한 번씩.

몸소 실천하고 있다.

차가 없어 걸을 수밖에.

이렇게 마음먹으면 걷는 마음이 당연해진다.




대체로 걷는다.

걷다 보면 삼라만상이 내 눈에 쏙 들어오고 그 문화는 내 발치에 다 깔린다.

좋아 보이는 일은 지나며 흐뭇해하고 근심스러운 모습은 부디 좋아지길 하며 지난다

지나치며 보이는 미소들과 지나치며 우는 모습도 성난 표정도 본다. 후딱 지나가길 기원한다. 

대부분은 무표정한 채다.

다 보인다.

크게 보여 나를 있는 그대로 내려놓을 수 있다.


출처 픽사베이


대체로 걷는다.

걷기가 취미도 아니고 산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끌리지도 않는다

편한 게 좋고 꼼지락은 귀찮은 나이.

대중교통 좌석 나면 쪼르륵 달려가 냉큼 앉는 엉덩이는 보기 싫고 경보나 마라톤도 질색이다.

앉아서 커피 홀짝이는 것보다 대체로 살살 움직이면서 나누는 대화가 좋고

경량 운동화를 갖추고 히프가 업되도록 어깨를 곧추세우는 대신 늘 신는 익숙한 신발채로 여간한 거리는 두 달로 걸을 뿐이다.

요즘은 밤 9시면 줄넘기 천 개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들 뒤를 슬슬 쫓아가서 동네 놀이터를 뱅뱅 돈다.

걷는다.

딱 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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