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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Apr 09. 2023

배신은 곰도 동굴 안으로 밀어 넣는다.

"자꾸 깜빡깜빡해. 나이 들어 나한테 문제 생기면 주저 말고 시설로 보내. 원망 안 해."

반장난 같지만 마음에 있던 소리다.

남편은 사후 신체기증에 반대하고 보험이나 연금에 회의적이고 가족묘를 고집하는 둥 노후에 대해 나와 의견이 정반대인 사람이다.

그러던 남편이 부쩍 늘어난 흰머리에 난색 했다.

시댁에선  흰머리 넘겨준 것도 아닌데 우리 부부를 번갈아보시다가 "염색 좀 해야겠다." 아들에게 하시는 말투가 좀 그랬다.

집에 와 묻지도 않고 염색을 해줬다.

머리는 젊어져도 마음도 덩달아 젊어질 리가.


허리가 자주 아프다 하고 앉았다 일어나는 데도 "끙"소리부터 난다고.

장이 말썽이라쳐다도 안 보던 유산균을 챙긴다.


우리 집에 최근 사춘기 문턱, 3.9 춘기 한 분 등극에 이어 오춘기 턱끝에 온 4.9 춘기 한 분 추가!

해결 안나는 고민을 왜 하는지 이해 안 되는 고민이 있던 남편 심기가 복잡하다.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되는". 

흘린듯한 말이지만 대꾸해야 할지 내버려 둬야 할지 이번에는 심기가 복잡하다.




ㅅ씨는 넉살 좋고 리더십 있는 남편의 절친이었다.

신혼집 근처에서 남편과 만나면 빈손으로 들려 보내는 적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이나 롤케이크를 번번이 챙겨주고도 자기 자식을 맺어준 양 나만 보면 "재수 씨 고마워요." 하는, 남편에게 큰 형님 같은 사람이었다.


코로나를 겪으며 벌려놓은 사업이 휘청거리고.

기러기 아빠에, 병든 노부를 부양하느라 고생한다기에 안쓰러움이 동분서주하느라 남편과도 통 못 만나는 눈치였다.




급전이 필요할 때 우리가 손 내밀 곳은 어디인가.

돌고 돌아 절친이지만 수입 빤한 남편에게 달이면 된다고 사정하더란다.

아내의 입장이자 ㅅ씨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으로서 말했다.

"당장 전액은 힘들고 절반만 바로 마련해서 보내줘요. 대신에 못 돌려받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기면 보내요."

동의하기도 전에 보내온 계좌번호에 남편 기분이 살짝 불편해졌단다.

받지 않고 돕는 거로 하고 남편이 약속 기일을 잊길. 

무엇보다 속히 해결되어 남편이 도움이 되어 기분 좋게 술 얻어먹길.




돈을 잃는 건 그렇다 쳐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매번 인간이다.

약속일자가 훌쩍 넘어갈 때도. 말 그대로 친구 도운 거려니 하면서. 상환의 기대나 사업이 제 궤도로 돌아가길 바라는 친구로서의 마음을 떠나서.

그냥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려운지.

혹은 우리 사이에 굳이 해야 하나라고 생략했든.

남편은 많은 상처를 받은 후였다.

대소사에 늘 앞장서는 ㅅ씨인지라 모임에 여전히 나와 술잔을 맞대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한마디 없었다는 건 뒤늦게 알았다.

 위로는 되려 자존심 상할 것이다. 불필요하다.




주말에 조의금 챙기는 검은 양복의 남편은 표정이 안 좋다.

친구 아버님 상에 가서 얼굴 마주하게 될 것이, 빌려준 사람이 빌린 사람 눈치를 살피는 상황이, 돈거래의 위악이다.

그래도 내 편인 남편을 편드느라 "아뭇 소리 없으면  속이 오죽할까, 하고 잊어요. 너무 태연해 보이면 사람 잘못 봤구나, 잊어요."

사회성 밝은 ㅅ은 장례식장 선두에서 상주보다 더 큰 일을 해내며 좋은 사람 노릇을 할 것이다.

옹색한 속을 감추지 못해 인상 쓰고 자기 속 관리가 안될 사람이 되려 남편이라는 것이 씁쓸하다.


양복으로 갈아입으며 뺄랫거리로 나온 남편 실내복 바지 주머니 속을 홀랑 까본다.

실밥과 먼지들, 동전 두 개, 영수증.

엄마는 쓰레기통에 탈탈 털어 비워낸다.

남의 속도 이렇게 죄 들여다보고 "그랬구나, 속에서 이런 들이 있어서 그랬구나." 하면서 토닥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성에서 온 남자의 동굴문화는 금성 여자와 다르다.

동굴에 잘 안 들어가는 대신 한번 들어가면 한참 걸린다.



출처 픽사베이


남편이 동굴 안에 들어간 적이 있던가.

곰도. 배신은 동굴 안으로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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