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가 박찬선 Nov 11. 2017

생각하는 삶

용기와 마주하다

용기와 마주하다     


가을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매년 반복되는 계절이지만 중년에 맞는 가을은 다르다. 안타까움과 아쉬움 그리고 기쁨과 탄식이 교차하면서 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성숙함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무더위가 꺾여 가던 8월 말경,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딸이 로스쿨 진학을 위해 리트 시험을 치렀다.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와 도서관을 오가며 시험을 준비했건만 돌아온 건 굳게 잠긴 딸의 방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흐느낌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시험 결과가 나왔을 때는 흐느낌이 통곡으로 바뀌었다. 생각보다 결과가 더 안 좋게 나온 것이다. 이틀이 지난 후 늦은 밤에 딸과 마주 앉았다.

“아빠, 학원 접수한 것 취소해야 될 것 같아요”

“응, 그래 그렇게 해!”

면접과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미리 학원을 등록해 두었는데 로스쿨 원서조차 접수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빠 생각에는 한 번 시작한 일이니까 끝까지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년에 다시 시험을 준비하더라도 이번에 끝까지 가보면 준비한 만큼 너에게 도움이 될 것 같구나, 딸아 용기를 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였다.      

며칠이 지난 후에 딸은 로스쿨 입시 설명회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용기를 얻었는지 이번에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남은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세 번씩 학원에서 밤 11시 45분에 수업이 끝이 나고 집에 오면 새벽 1시가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이 흘러갔고 어제 로스쿨 1차 발표가 있었다. 합격이었다. 앞으로 면접시험이 남아 있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감사하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가 싶다. 괴테는 “용기를 잃는 것은 자기의 전부를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팀 보울러는 “인생이란 가장 슬픈 날 가장 행복하게 웃는 용기를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용기란 무엇일까요? 좋은 글에 나왔던 이야기 한편을 함께 나누고 싶다.


 모녀가 숲길을 걷고 있었다. 어린 소녀는 ‘용기’라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용기가 뭐예요? 작은 고양이가 자기보다 훨씬 몸집이 큰 개를 노려보며 으르렁대는 게 용기인가요?”

 그 어머니는 잠시 생각한 다음 이렇게 대답했다. “네 말도 맞다. 그런데 진정한 용기는 그 이상이란다.”

 모녀는 계속 숲길을 걸었다. 마침내 모녀는 얼마 전 불이 나 잿더미가 된 숲에 다다랐다. 그곳은 검게 그을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숲 한복판에 검게 탄 땅을 뚫고 작은 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용기란 바로 저 꽃과 같은 것이란다.”     

강한 힘을 가진 자를 이기는 것도 용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힘차게 뚫고 자신을 지키며 키워나가는 것이다.      

카네기 행복론에 보면 조지로나라고 하는 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분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변호사로 일을 했는데 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스웨덴으로 피난을 갔다. 무일푼으로 왔기 때문에 급히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는 수개 국어에 능통했기에 무역회사의 통신원으로 취직을 준비해서 무역회사들을 찾아다녔는데 전쟁 중임으로 일자리가 없으니 이름만 적어 두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무역회사에 취직하겠다는 당신의 생각은 잘못입니다. 저희 회사는 통신원이 필요 없습니다. 만일 필요하다고 해도 당신을 채용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당신은 우선 스웨덴 말에 능숙하지도 않고 편지는 오자투성이었습니다.”

조지 로나는 그 편지를 읽고 무척 화가 났다.

“오자투성이라니 무슨 소리야, 이런 무식한 것들! 제 놈들의 편지도 오자투성이가 아닌가!”

조지로나는 이런 촌 놈들을 혼내 주려고 펜을 들었다. 그러나 잠깐 그는 반성했다.

‘어쩌면 이 사람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딴에는 스웨덴 말을 공부한다고 했지만, 모국어는 아니니까 미처 몰랐던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스웨덴 말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이 사람은 내게 좋은 충고를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말버릇은 좀 고약했지만, 그의 호의는 감사할 만하다. 그러니 한번 인사 편지라도 보내기로 하자.’     

그래서 조지로나는 이렇게 편지를 썼다.

“귀사에서는 통신원이 필요치 않는데도, 수고스럽게 회답까지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구나 귀사의 사정을 몰랐던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귀사에 서신을 올렸던 것은 다름 아니라, 귀사는 무역업계에서는 손꼽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편지에 문법상의 잘못이 있었던 데 대해서는 심히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더욱 스웨덴 어를 공부하여 두 번 다시 그르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앞길에 친정하신 지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후 조지로나는 바로 그 편지의 장본인에게서 내사를 요청받았고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용기를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 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을 다스려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진정한 용기는 요란하지 않고 겸손하고 고요하고 침착하다.





“인생이란 가장 슬픈 날 가장 행복하게 웃는 용기를 배우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하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