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도 괜찮아
얼마 전에 대입 수능 시험을 쳤던 아들의 얼굴이 지금까지 어둡다. 포항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되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 막판 흔들림을 보이던 아들이 평소 모의고사 때보다 낮은 점수가 나온 것이다. 이미 떠난 화살에 마음을 둔다고 변화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은 것은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 때문이리라.
매년마다 수능이 끝나면 전국적으로 250명 정도의 자살자가 나온다고 한다.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에도 낙심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은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차가운 어둠이 서쪽 하늘을 덮기 시작할 때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골방에 들어간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아빤 데, 오늘 휴대폰 사러 가자”
“난 괜찮은 데요”
아들의 휴대폰은 중1 때 사준 오래된 폰이다. 카톡도 인터넷도 안 된다. 학교 친구들과의 연락할 일이 있을 때 많이 답답해하면서 수능이 끝나는 날 만을 기다려 왔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대폰을 사 준다는데 반응이 영 싸늘하다.
“아들아, 아빠 지금 집으로 가고 있으니까 준비하고 있어”
전화를 끊고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괜찮다는 아들을 억지로 끌다시피 해 시내로 나왔다. 하얀 조명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점원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맞아주었다.
“어떤 기종을 원하세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아들은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로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가 점원을 보면서 최신 기종으로 보여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 없어하던 아들이 점원의 설명을 들이면서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맘에 드는 걸로 골라”
한참을 고민하던 아들이 기종을 선택했고 금세 개통이 되었다.
인생은 이해하는 만큼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는 만큼 알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점수를 얻어야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면 느끼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의 손을 잡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못해도 괜찮아”
손을 잡은 아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도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함으로 가치를 높이면 나이가 들수록 더 빛이 나게된다.
발명왕 에디슨은 초등학교 시절에 퇴학을 당했다. 이유는 ‘1+1=2’란 것을 인정하면서도 때로는 1이 된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선생님이 에디슨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오게 하고는 아이를 데려가라고 얘기했다. 어머니가 이유를 묻자 선생님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에디슨에게 “1+1은 얼마가 되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에디슨이 이렇게 대답했다.
“예, 둘이 되지만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1+1이 1이 되는 것을 보여 줄까요”
그는 진흙을 이겨 양손에 가져와서 “엄마, 이렇게 합치니까 하나가 되잖아!”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에디슨을 꾸중하지 않았고, 그의 엉뚱한 대답을 소중히 여겼다. 말도 안 되는 질문도 받아들이고, 그렇게 묻는 아이의 호기심까지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발명왕 에디슨이 탄생한 것입니다.
사람을 볼 때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더 소중하다. 마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본다.
모든 사람은 이해받기를 갈망하며 살아간다. 이해받고 격려받을 때 새로운 힘과 열정이 생겨난다. 사람은 연약하고 두려움이 많아 쉽게 낙심한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차가운 눈빛 하나에도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따뜻한 한마디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다. 쓰러졌던 사람이 다시 일어서게 되고 하던 일을 계속해 갈 수 있게 된다.
“못해도 괜찮다. 느려도 괜찮아.”
거북이가 느려도 거북이로 살아가는 법이 있는 것이니까!
못해도 괜찮아,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