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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찬선 May 25. 2017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두 개의 현실

두 개의 현실     


 사람은 “객관적인 현실”과 “심리적인 현실”이라는 두 개의 현실을 살아갑니다. 객관적인 현실은 눈에 보이는 현실입니다. 심리적인 현실은 마음에서 일어난 상상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을 볼 때는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현실만을 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바라볼 때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주관적인 현실, 곧 심리적인 현실을 통해서 봅니다.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현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관적인 현실이 마음의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특히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면 현실이 더욱 왜곡되어 보입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이 어느 날 우물가를 지나고 있었는데 그를 쳐다본 동네 아낙네들이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제는 뭘 믿고 저렇게 못생겼냐! 얼굴은 홀쭉하고 눈은 왜 저렇게 움푹하지! 참 못 생겼다”   그날 이후로 이 소년은 자신은 정말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중에 아름다운 미국 여대생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처럼 잘 생긴 동양 학생은 처음 보네요!”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여대생이 해준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훤칠한 키에 정말 잘생긴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못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못생겼다고 생각했던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닙니다. 상처받은 마음이 임의로 만들어 놓은 그릇된 상상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객관적인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인생이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6년 동안 공부했지만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는데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곧바로 다음 해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현실과 심리적인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현실을 받아들일 때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가서 체조를 배워 미국의 국가 대표 예비 선수에 올랐던 이승복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8세 때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와서 뉴욕의 퀸스 구역에 정착했습니다. 부모님은 하루 20시간 이상 노동을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동생들을 돌보며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11세가 된 어느 날 우연히 동네에 있는 YMCA에 갔다가 어깨너머로 체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유연했던 그는 체조에 큰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유망주로 선발되어 15세가 되었을 때 펜실베이니아 주 국립 체조 훈련원에 입소해서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대회에 출전을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체조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미국 체조 챔피언대회에 나가서 3위를 했고 전미 체조 대회에 나가서 마루와 도마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1984년에는 LA 올림픽 미국 체조 예비 선수로 선발되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의 미래는 한없이 맑고 밝아 보였습니다.      

1983년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 공휴일이었습니다. 모처럼 가족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한가롭게 쉬고 있는 시간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4시간 거리에 있는 체조 연습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며 한마디 하셨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왜 저렇게 체조에만 미쳐 사느냐?”      

아버지는 아들이 운동보다는 공부를 통해 전문직 화이트칼라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코치 선생님도 잔뜩 화가 나 있었습니다. 훈련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화도 났습니다.      

이승복은 아버지와 코치 두 사람에게 그동안 피나게 훈련해온 고난도 기술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직 몸이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누가 말릴 겨를도 없이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고 몸의 4분의 3을 비틀어 착지하는 고난도 기술을 하기 위해 마루로 뛰어갔습니다. 몸이 하늘 높이 솟구쳤습니다. 그는 속으로 크게 외쳤습니다.    

“아버지, 코치님, 나를 좀 봐주세요!”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턱이 바닥에 부딪혔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머리로 일어서려고 버둥거렸지만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척추 사이 신경조직이 끊어졌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 치료를 받았지만 3개월 동안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이때 나이 겨우 18세였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마음에는 분노만 남았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평생 휠체어에서 보내야 합니다. 당신의 주치의로서 내가 판단하기에 당신은 앞으로 체조는 물론이고, 혼자 걸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던 청년은 병원 회의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쟁반을 집어던졌습니다. 그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고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이 젊은이의 인생도 그렇게 산산조각 나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력이 조금씩 회복되자 그는 미친 듯이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가슴 아래로 전부 마비되어버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생각 만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미국 병원에는 질병 때문에 학교를 갈 수 없는 환자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뉴욕대 병원에서도 네 분의 선생님이 문학과 수학, 역사를 가르쳤는데 그중에 영문학을 가르치는 엘리스라는 할머니 교사가 그에게 미국 대학 진학 시험(SAT)을 준비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체조에만 열중했기에 공부하는 데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공부를 하려면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뉴욕대에 재활병원을 세웠던 하워드 러스크 박사의 자서전 「돌봐야 할 세상」이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객관적인 현실을 보고 중증 장애인이 된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살아가야 할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고통스러울 때면 “그래 공부하다가 죽자”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5개월 동안 죽어라고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점수를 받아서 1984년에 뉴욕대에 입학을 해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1988년에 뉴욕대를 졸업한 후 그는 콜롬비아 보건대학에 진학해서 공중보건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30여 개의 대학에 입학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 4월 다트머스 의대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가 사고를 겪은 후 10년 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후 이승복은 다트머스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하버드 의대에서 인턴 과정을 거치고 2005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인 존 홉킨스 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현재는 존 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 수석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이승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수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내 희망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에게 이제 육신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할 수 없다는 마음속의 장애에 갇히는 것이 무서운 일이지요. 사고로 나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얻었습니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아마 의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절망한 채 병원에 실려 온 환자들은 나를 보면서 희망을 갖는다고 합니다. 환자들 앞에서 씩씩하게 휠체어를 밀며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 존재의 이유이며 내 사명입니다.”     

닥터 이승복은 객관적인 현실과 주관적인 현실 사이에서 누구보다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고 인생의 목표와 꿈을 향해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리고 중증 장애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힘을 키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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